안씨 족사 쟁점 정리

문중 카페를 파행적으로 운영한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고, 대종회장에게 무슨 책임을 묻나?
운영자 자신이 카페에서 수많은 분란을 일으켜 죽산측의 안씨동원보에 대응하던 팀웍을 풍비박산 내지 않았나?
문중 카페를 정치선전장으로 만들어 족사에 관심있는 사람은 다 떠나게한 장본인이 누구에게 무슨 책임을 묻나?
나는 항상 옳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책임이 없고, 일이 맘에 안들면 모두 남의 책임인가?

대종회장은 문중에 누를 끼친 운영자의 책임을 물어 카페지기에게 강퇴시키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문중 카페(대종회 홈페이지)를 자신의 정치 선전장으로 전락시킨 운영자는 물러나야 한다.

4년 전 교복입고 광우병 집회 갔던 소녀, "시위주도 세력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
‘미친소병’ 남한 비판에 열 올리는 북한 : 유럽 광우병 파동 때 받아 먹은 독일 쇠고기는 어쩌고…
北 “미친 쇠고기 수입 반대 반정부 투쟁 마땅” 선동 안간힘
친북 반미 좌파들이 벌인 광우 촛불 난동은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바인데....
4년전 문중 카페를 광우병 괴담으로 도배한 운영자는 북한을 위해 복무한 것인가?

영남 종원들이 안씨동원설을 신봉한다며 비방하는 운영자 자신은 영남 어느 지역 출신인가?
[과거 동국안문에서 안씨동원설을 믿던 운영자를 계몽해준 사람도 영남 사람이다.
명색이 문중 카페 운영자라는 사람이 이 따위 식으로 지역 감정까지 표출하는가?]

운영자가 일으킨 분란으로 카페를 등진 사람들은 운영자가 떠나야 돌아올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독불장군식 운영으로 그만큼 민폐를 끼치고도 코딱지보다 더 작은 카페 운영자의 권력을
세상 떠나는 날까지 누리겠다니, 자녀에게 물려주기라도 할 작정인가?
문중 카페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독불장군 운영자가 떠나야 한다.
그리고 운영자가 고의적으로 떼어낸 카페의 원래 이름 화합정도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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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안씨들이 내세우는 우리나라 안씨들이 모두 신라말 중국서 온 이씨에 기원한다는 안씨동원보(安氏同源譜)는 고려말 족보라는 주장과 달리 조선말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위보(僞譜)라는 것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고려말 족보라면서 고려말 계보조차 엉터리인 안씨동원보에 처음 나오는 신라말 고려초 계보가 정상이라고 우길텐가?

죽산안씨들이 이제와서 철저하고 객관적인 고증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조선말에 나돌아 다니던 뜬 소문만 믿고 누군지도 모르는 가상 인물들을 아무 고증도 없이 조상으로 받아들였다고 시인하는 것이다. 철저하고 객관적인 고증은 그런 설을 받아들이기 전에 했어야 한다. 안씨동원보가 조선말의 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 객관적인 고증 운운하는 것은 나올 가능성도 없는 그 설을 뒷받침하는 문헌이 나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씨동원보를 고수하겠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죽산안씨 자신들끼리만 안씨동원보가 객관적으로 고증되었다고 우기지 말고 객관적 연구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인정을 받아보라.

죽산(竹山) 지명도 없던 신라말에 죽산군(竹山君) 봉군 받아 죽산 안씨 시조가 되고, 신라말 고려초에 내리 3대를 판도판서(版圖版書),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사람들을 자신들 조상이 틀림없다면서 모시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제발 다른 안씨 문중을 그런 사람들의 동생 집안이라고 하지는 말아달라. 그런 식으로 비석 같은 곳에 또 새겨 넣는다면 송사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후손들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옛 기록들과는 전혀 다른 수상쩍은 내용의 족보를 들고 고민 고민하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가?

(구)죽산안씨 시조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문헌이 죽산안씨 자신들 문헌이 아닌, 다른 안씨들이 근거없다고 폐기한 기록이라면 넌센스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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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정하는 각 안씨별 연원을 볼 수 있는 링크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 올라 있는 것과 다른 주장을 하려면 먼저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한중연의 기록부터 고치고 나서 그렇게 말하라. 다른 안씨의 연원에 대해 여기의 인정을 받지도 못하는 주장을 함부로 내놓아 다른 안씨들을 모독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안씨들 간에 고증을 두고 백년을 논란해도 합의를 도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니, 공신력 있고 객관적인 연구기관인 한중연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 안씨들간에 더 이상 논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성씨명본관명현대지명
안씨(安氏) 공산(公山) 충청남도(忠淸南道) 공주시(公州市)
안씨(安氏) 광주(廣州) 경기도(京畿道) 광주시(廣州市)
안씨(安氏) 순흥(順興)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주시(榮州市)
안씨(安氏) 신죽산(新竹山) 경기도(京畿道) 안성군(安城郡)
안씨(安氏) 안산(安山) 경기도(京畿道) 안산시(安山市)
안씨(安氏) 제천(堤川) 충청북도(忠淸北道) 제천시(堤川市)
안씨(安氏) 주천(酒泉) 강원도(江原道) 영월군(寧越郡) 주천면(酒泉面)
안씨(安氏) 죽산(竹山) 경기도(京畿道) 안성군(安城郡)
안씨(安氏) 탐진(耽津) 전라남도(全羅南道) 강진군(康津郡)
안씨(安氏) 태원(太原) 중국(中國)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이씨(李氏) 고성(固城) 경상남도(慶尙南道) 고성군(固城郡)

고성이씨(固城李氏) 시조 이황(李璜)은 형 이원(李瑗)과 함께 807년 당나라에서 신라로 와 1063년에 고려의 호부상서가 되었다? 남의 성씨 연원을 죽산안씨들이 마음대로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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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의 학자 양계초(梁啓超 , Liang qi-chao, 1873-1929)가 제시한 아래 위서(僞書) 판별법에 따르면 환단고기 [桓檀古記]화랑세기 [花郞世記] 같은 것 뿐만 아니라 안씨동원보(安氏同源譜)도 정확히 위서(僞書)에 해당한다.

양계초(梁啓超)의 위서(僞書) 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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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고려 초에 출계와 계자를 기록한 안씨동원보는 조선말의 위보(僞譜)인 것이 명확하다.

조선에서 17세기 후반 이전까지는 딸도 아들과 동등하게 제사를 지내고 상속도 받았다.
마크 피터슨 美 브리검영대 근동 언어학과 교수

그는 방대한 조사를 토대로 조선에서 17세기 후반 이전까지는 딸도 아들과 동등하게 제사를 지내고 상속도 받았다는 내용의 박사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이후 책으로 출간돼 1996년 해외 우수 한국학 연구서에 주는 연암상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유교사회의 창출-조선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의 변화’(일조각·2000년)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이 연구에 필수인 조선시대 족보 해석은 와그너 교수에게 배운 것이다. “와그너 교수님은 ‘보학(譜學)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꼼꼼하게 족보를 연구하신 분이에요. 성씨만 얘기해도 그 조상을 줄줄이 꿰셨죠. 제가 그분 밑에서 박사논문을 썼으니 얼마나 골치가 아팠겠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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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tw | 2013/03/31 04:56 | 트랙백

[통합진보, 종북-폭력의 그림자]“대한민국에 빨갱이는 없다”던 안철수의 긴 침묵

자본주의 단물만 빨아먹던 안철수가 좌빠리 행세하는 것도 웃기고,
좌빠리들이 안철수같은 자본가를 떠받드는 것도 코미디다.

언론이 띄워준 조작된 이미지로 얻은 인기만 믿고
세상 물정도 전혀 모르고, 정치적 현안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대통령하겠다고 설쳐대는 안철수.....안철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과대포장되어 잘못 알려진 인물이다.

[통합진보, 종북-폭력의 그림자]“대한민국에 빨갱이는 없다”던 안철수의 긴 침묵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는 말은 자신이 빨갱이인 것을 감추기 위한 말이거나
아니면 "나는 빨갱이를 알아볼 능력도 없는 멍청이"라는 실토이다.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 부를 수 있어야 된다던 빨갱이 박원순을 서울 시장 만들어 준 한심한 인간.....
박원순 아닌 나경원 찍은 서울 시민들을 비상식으로 몰아가던 무지막지한 사람...

‘종북의 뿌리’ 민혁당 출신, 김영환·이석기의 엇갈린 운명
통합진보당 사태로 본 대한민국 지하당

하태경 "중국의 김영환씨 구금은 무리수 두는 것"

전향한 김영환의 반성문 "내가 망친 청년들.."
내 과거를 고백한다 - 주체사상 버린 이유
주체사상을 버린 김영환 반성문 全文

노조가 장악한 좌빠리 방송 KBS가 이상해졌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빨갱이 음악가 정율성보다 더 못한 인물로 그리더니,
청년 대장님의 비위를 거스르는 이런 논평도 다 하다니...
[KBS 뉴스해설] 김영환 구하기

호남 출신의 위대한 인물이 고작 정율성 따위냐?
위대한 수령, 천출 명장, 청년 대장......이런 사람들이 다 전주 김씨 아닌가?
동상도 세우고 기념관도 세워야지...

'김동식 공식'에 딱 걸린 이석기!
김동식은 전향한 남파간첩으로 빨갱이 판별하는 공식을 제시하였다.

한때는 친구였던 통진당 당권파 K에게... : 곽대중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 재중 칼럼니스트]
<곽대중의 加油 KOREA!-storyK 칼럼>전남대 총학생회실에서의 논쟁
진보진영을 망하게 하고 싶다면 지금처럼 반민주 행태를 계속하길


인민을 배신한 '변절자' 이석기의 최후는 : 곽대중
이석기 당선자는 감옥을 갔다 온 뒤에도 신념을 잃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들의 신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신념이란 말인가? ‘신념’이라는 고귀한 단어를 입에 담을 자격이,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에게는 없다. 당신들의 신념이란, 성폭행범이 징역을 살고 나와서 또다시 강간을 하더니 “나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자랑하는 꼴이다.

‘변절자’ 이석기에게 보내는 충고 : 독재의 품에서 인민의 편으로 돌아오라! : 곽대중

박선영 “중국산 인육캡슐, 탈북여성 태아 살해해 만들어”
남한의 종북ㆍ친중ㆍ반미ㆍ반대한민국 좌파들이 이런 일을 부추긴다.

by botw | 2012/05/18 05:43 | 트랙백

Consilience

Consilience

Although the concept of consilience in Whewell's sense was widely discussed by philosophers of science, the term was unfamiliar to the broader public until the end of the 20th century, when it was vividly revived in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 1998 book by the humanist biologist Edward Osborne Wilson, as an attempt to bridge the culture gap between the sciences and the humanities that was the subject of C. P. Snow's The Two Cultures and the Scientific Revolution (1959).

by botw | 2012/05/17 17:42 | 트랙백

김일성, 70년대에 재남침 시도, 중국 반대로 무산.

동아일보 아이들도 김일성을 존경하나 본데....
미이라가 된 동족 학살의 원흉 김일성을 깍듯이 주석으로 부르니....

北김일성, 1975년 中에 남침지원 요구했다
베트남, 캄보디아 혁명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1975년 봄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일성 국가주석은 `남조선 해방‘을 위한 군사적 행동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시 미국과의 데탕트를 추구하며 한반도 긴장완화를 원치않던 중국으로부터 거절당한 것으로 옛 동독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한 1975년 4월18일부터 26일까지는 자유 월남이 북부 월맹에게 패망한 1975년 4월 30일 바로 그 시기이다. 김일성은 미리 그런 사실을 알고 중국을 방문해 남침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by botw | 2012/05/16 11:26 | 김일성/김정일의 蠻行 | 트랙백

5.16 당일 서울시민 여론조사 결과

5.16 당일 서울시민 여론조사 결과
쿠데타에 반대하던 미군측의 조사결과 60%가 지지, 事後 조사 결과 약70%가 지지.

美 대사 극찬, '5.16은 진정한 혁명'
진정한 의미의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작하여 전면적이고 본질적인 개혁을 시작하였다.

한국 현대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 있었다면 4.19나 5.18이 아니라 5.16이다.
4.19나 5.18은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역할만 했을 뿐,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6.25 이후 문맹률 80%의 세계 최빈국에서 민주주의는 한번의 시위나 폭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장기간에 걸쳐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개선되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이러한 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5.16이다.

by botw | 2012/05/16 10:04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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