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3월 31일
안씨 족사 쟁점 정리
문중 카페를 정치선전장으로 만들어 족사에 관심있는 사람은 다 떠나게한 장본인이 누구에게 무슨 책임을 묻나?
나는 항상 옳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책임이 없고, 일이 맘에 안들면 모두 남의 책임인가?
대종회장은 문중에 누를 끼친 운영자의 책임을 물어 카페지기에게 강퇴시키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4년 전 교복입고 광우병 집회 갔던 소녀, "시위주도 세력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
‘미친소병’ 남한 비판에 열 올리는 북한 : 유럽 광우병 파동 때 받아 먹은 독일 쇠고기는 어쩌고…
北 “미친 쇠고기 수입 반대 반정부 투쟁 마땅” 선동 안간힘
친북 반미 좌파들이 벌인 광우 촛불 난동은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바인데....
4년전 문중 카페를 광우병 괴담으로 도배한 운영자는 북한을 위해 복무한 것인가?
영남 종원들이 안씨동원설을 신봉한다며 비방하는 운영자 자신은 영남 어느 지역 출신인가?
[과거 동국안문에서 안씨동원설을 믿던 운영자를 계몽해준 사람도 영남 사람이다.
명색이 문중 카페 운영자라는 사람이 이 따위 식으로 지역 감정까지 표출하는가?]
운영자가 일으킨 분란으로 카페를 등진 사람들은 운영자가 떠나야 돌아올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독불장군식 운영으로 그만큼 민폐를 끼치고도 코딱지보다 더 작은 카페 운영자의 권력을
세상 떠나는 날까지 누리겠다니, 자녀에게 물려주기라도 할 작정인가?
문중 카페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독불장군 운영자가 떠나야 한다.
그리고 운영자가 고의적으로 떼어낸 카페의 원래 이름 화합정도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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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안씨들이 내세우는 우리나라 안씨들이 모두 신라말 중국서 온 이씨에 기원한다는 안씨동원보(安氏同源譜)는 고려말 족보라는 주장과 달리 조선말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위보(僞譜)라는 것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고려말 족보라면서 고려말 계보조차 엉터리인 안씨동원보에 처음 나오는 신라말 고려초 계보가 정상이라고 우길텐가?
죽산안씨들이 이제와서 철저하고 객관적인 고증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조선말에 나돌아 다니던 뜬 소문만 믿고 누군지도 모르는 가상 인물들을 아무 고증도 없이 조상으로 받아들였다고 시인하는 것이다. 철저하고 객관적인 고증은 그런 설을 받아들이기 전에 했어야 한다. 안씨동원보가 조선말의 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에 와서 객관적인 고증 운운하는 것은 나올 가능성도 없는 그 설을 뒷받침하는 문헌이 나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씨동원보를 고수하겠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죽산안씨 자신들끼리만 안씨동원보가 객관적으로 고증되었다고 우기지 말고 객관적 연구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인정을 받아보라.
죽산(竹山) 지명도 없던 신라말에 죽산군(竹山君) 봉군 받아 죽산 안씨 시조가 되고, 신라말 고려초에 내리 3대를 판도판서(版圖版書), 중서령(中書令)을 지낸 사람들을 자신들 조상이 틀림없다면서 모시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제발 다른 안씨 문중을 그런 사람들의 동생 집안이라고 하지는 말아달라. 그런 식으로 비석 같은 곳에 또 새겨 넣는다면 송사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후손들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옛 기록들과는 전혀 다른 수상쩍은 내용의 족보를 들고 고민 고민하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가?
(구)죽산안씨 시조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문헌이 죽산안씨 자신들 문헌이 아닌, 다른 안씨들이 근거없다고 폐기한 기록이라면 넌센스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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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정하는 각 안씨별 연원을 볼 수 있는 링크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 올라 있는 것과 다른 주장을 하려면 먼저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여 한중연의 기록부터 고치고 나서 그렇게 말하라. 다른 안씨의 연원에 대해 여기의 인정을 받지도 못하는 주장을 함부로 내놓아 다른 안씨들을 모독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안씨들 간에 고증을 두고 백년을 논란해도 합의를 도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니, 공신력 있고 객관적인 연구기관인 한중연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 안씨들간에 더 이상 논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고성이씨(固城李氏) 시조 이황(李璜)은 형 이원(李瑗)과 함께 807년 당나라에서 신라로 와 1063년에 고려의 호부상서가 되었다? 남의 성씨 연원을 죽산안씨들이 마음대로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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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의 학자 양계초(梁啓超 , Liang qi-chao, 1873-1929)가 제시한 아래 위서(僞書) 판별법에 따르면 환단고기 [桓檀古記]나 화랑세기 [花郞世記] 같은 것 뿐만 아니라 안씨동원보(安氏同源譜)도 정확히 위서(僞書)에 해당한다.
양계초(梁啓超)의 위서(僞書) 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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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고려 초에 출계와 계자를 기록한 안씨동원보는 조선말의 위보(僞譜)인 것이 명확하다.
조선에서 17세기 후반 이전까지는 딸도 아들과 동등하게 제사를 지내고 상속도 받았다.
마크 피터슨 美 브리검영대 근동 언어학과 교수
그는 방대한 조사를 토대로 조선에서 17세기 후반 이전까지는 딸도 아들과 동등하게 제사를 지내고 상속도 받았다는 내용의 박사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이후 책으로 출간돼 1996년 해외 우수 한국학 연구서에 주는 연암상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유교사회의 창출-조선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의 변화’(일조각·2000년)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이 연구에 필수인 조선시대 족보 해석은 와그너 교수에게 배운 것이다. “와그너 교수님은 ‘보학(譜學)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꼼꼼하게 족보를 연구하신 분이에요. 성씨만 얘기해도 그 조상을 줄줄이 꿰셨죠. 제가 그분 밑에서 박사논문을 썼으니 얼마나 골치가 아팠겠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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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13/03/31 04:56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