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5월 22일
안씨 족사 쟁점 정리
....역사는 항상 새로 쓰게 된다. 언제 새로운 사실이 나타날지 모르고 새로운 사실이 고증될 때마다 새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록 선대에서 하신 일이라 할지라도 시정하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기에 이에 따라 죄송스러우나 수정할 수 밖에 없다.....
(족사에) 잘못이 있으면 선대에서 하신 일이라도 바로 잡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다.
안씨 시조 동래설이 처음 나돈 1700년대 말부터 광주나 순흥안씨는 이원(李瑗) 후손으로 거론되었으나, 정작 이 두 문중은 이 설을 근거 없는 것으로 배척한다. 반면에 (구)죽산안씨를 이원 후손으로 기록한 안씨동원보는 1909년에야 처음 나타났는데, 1976년에 뒤늦게 이를 새로운 시조 기록으로 채택하고 자청해서 이원(李瑗) 후손이 되어, 안씨동원보를 인정하지 않는 광주와 순흥 안씨를 나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고성이씨 시조 이황은 이존비(李尊庇,1233∼1287)의 6 대조이고, 1063년에 호부상서가 되었으므로, 807년에 중국서 왔다는 이원의 동생이 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 1999년 죽산 대동보의 주장은 더 이상 살아 남을 수 없고 폐기할 수 밖에 없다. 다음에는 잡다한 서로 상충하는 여러 기록 중에서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셈인가? 이제와서 스스로 이미 틀렸다고 부정한 1976년 죽산 대동보로 되돌아갈 것인가? 그러고는 다른 안씨들에게 저번 것은 틀렸지만 이번 것은 틀림없이 맞다고 할 것인가?
자신들 족보에 이름도 나오지 않는 신원 불명의 인물이 일제시대에 느닷없이 가지고 나타난 안씨동원보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나, 시남(市南) 유계(兪棨, 1607-1664),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및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과 같은 대학자(大學者) 들이 남긴 기록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끝까지 우길 셈인가? 틈만나면 존재하지도 않는 고려말 족보 타령하는 사람들이 목은의 고려말 묘지명은 부인할 것인가? 문제가 되는 사안은 목은 당시의 일로 목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인데, 목은의 묘지명과 어긋나는 다른 내용의 고려말 족보가 나올 수 있기나 한가?
원래의 문중 전래 기록에 없었고, 당대의 묘지명등 확실한 문헌으로 뒷받침 되지도 않는 새로운 설을 애매한 기록이나 주장을 따라 검증없이 받아 들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대다수 옛 문헌이 인터넷에 올라 검색 한 번이면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시대에 잘못된 주장이 오래 살아 남을 수는 없다. 계속 우기면 얼마간은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나, 부담을 후손에게 떠 넘기는 일이 된다. 잘못을 알았으면 최대한 빨리 바로잡아, 후손들이 올바로 알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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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록 선대에서 하신 일이라 할지라도 시정하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기에 이에 따라 죄송스러우나 수정할 수 밖에 없다.....
(족사에) 잘못이 있으면 선대에서 하신 일이라도 바로 잡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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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 시조 동래설이 처음 나돈 1700년대 말부터 광주나 순흥안씨는 이원(李瑗) 후손으로 거론되었으나, 정작 이 두 문중은 이 설을 근거 없는 것으로 배척한다. 반면에 (구)죽산안씨를 이원 후손으로 기록한 안씨동원보는 1909년에야 처음 나타났는데, 1976년에 뒤늦게 이를 새로운 시조 기록으로 채택하고 자청해서 이원(李瑗) 후손이 되어, 안씨동원보를 인정하지 않는 광주와 순흥 안씨를 나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이 묘지명(墓誌銘)을 인정하는데 몇 년이 더 필요한가, 100년? 200년? 300년?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면 있는 묘지명이 없어지기라도 하는가?
아니면 수많은 문헌을 이 잡듯이 뒤지면 이것을 뒤집을 새로운 기록이 나오기라도 할 것인가? - 최초의 안윤채(安潤采) 고려말 족보에는 이원(李瑗) 후손에 (구)죽산안씨는 없다.
- 고려말 과거 급제 기록을 통해 본 순흥안씨와 죽산안씨 인물들의 연대 비교
- 안씨(安氏)가 중국서 온 이원(李瑗)의 아들 3형제 후손이라는 설은 맹랑하고 근거없다.
- 이런 걸 뻔히 보고도 안씨동원설(安氏同源說)이 맞다고 우기는가?
- 죽산안씨들은 죽산 시조에 대해 자신들 선조보다 남들이 더 잘 알았다고 주장하는가?
- 송시열(宋時烈)의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신도비문(神道碑文)에 대해
3편의 안방준 묘도문이 모두 죽산안씨가 안원형의 선대부터 저명했다고 하여 순흥 분파가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 - 족보에도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토성분정설(土姓分定說)은 광주안씨 연원이 아니다.
고성이씨 시조 이황은 이존비(李尊庇,1233∼1287)의 6 대조이고, 1063년에 호부상서가 되었으므로, 807년에 중국서 왔다는 이원의 동생이 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 1999년 죽산 대동보의 주장은 더 이상 살아 남을 수 없고 폐기할 수 밖에 없다. 다음에는 잡다한 서로 상충하는 여러 기록 중에서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셈인가? 이제와서 스스로 이미 틀렸다고 부정한 1976년 죽산 대동보로 되돌아갈 것인가? 그러고는 다른 안씨들에게 저번 것은 틀렸지만 이번 것은 틀림없이 맞다고 할 것인가?
자신들 족보에 이름도 나오지 않는 신원 불명의 인물이 일제시대에 느닷없이 가지고 나타난 안씨동원보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나, 시남(市南) 유계(兪棨, 1607-1664),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및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과 같은 대학자(大學者) 들이 남긴 기록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끝까지 우길 셈인가? 틈만나면 존재하지도 않는 고려말 족보 타령하는 사람들이 목은의 고려말 묘지명은 부인할 것인가? 문제가 되는 사안은 목은 당시의 일로 목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인데, 목은의 묘지명과 어긋나는 다른 내용의 고려말 족보가 나올 수 있기나 한가?
원래의 문중 전래 기록에 없었고, 당대의 묘지명등 확실한 문헌으로 뒷받침 되지도 않는 새로운 설을 애매한 기록이나 주장을 따라 검증없이 받아 들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대다수 옛 문헌이 인터넷에 올라 검색 한 번이면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시대에 잘못된 주장이 오래 살아 남을 수는 없다. 계속 우기면 얼마간은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나, 부담을 후손에게 떠 넘기는 일이 된다. 잘못을 알았으면 최대한 빨리 바로잡아, 후손들이 올바로 알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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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12/05/22 10:55 | 안씨 족사 쟁점 정리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