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렴당(慕濂堂)과 경렴정(景濂亭)은 같은 뜻의 이름


안향 (安珦, 1243 ~ 1306)을 모신 영주의 소수서원(紹修書院)에는 중종 38년 (1543) 주세붕 선생이 세운 경렴정(景濂亭)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한다. 이는 광주안씨 밀양 사포파의 재실 모렴당(慕濂堂)과 꼭 같은 취지의 이름인데, 송나라의 유학자로 호가 염계(濂溪)인 주돈이 (周敦頤, 1017~1073)를 사모한다는 의미이다. 염계는 주돈이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던 곳의 시내 이름이기도 하다.

이런 이름의 건물 곁에는 대개 연꽃을 심은 연못이 있는데, 연꽃을 몹시 사랑했던 주돈이를 기리는 취지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돈이가 지은 글 애련설(愛蓮說)이 유명하다.

고려말에도 이미 익재(益齋) 이제현이 광주(光州)에 있던 탁광무(卓光茂)의 정자에 경렴정(景濂亭)이란 이름을 붙여주며 경렴정명(景濂亭銘)을 지어 주었고, 정도전(鄭道傳)이 이어 지은 경렴정 명 후설(景濂亭銘後說)도 있다. 탁광무의 문집 경렴정집(景濂亭集)이 한국문집총간에 실려 한국고전번역원에 올라 있다.

이런 사례들로 보아 고려말과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주돈이를 몹시 존경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죽계수를 바라보며 항상 깨어있는 정자 순흥 경렴정(景濂亭) 

http://cafe.daum.net/ahnjustice/LHnF/11


         <소수서원의 경렴정> -  이 건물은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로 중종 38년 (1543) 주세붕선생이 건립 하였다.

http://goodtimes.egloos.com/2114561


愛蓮說(애련설) 周敦頤(주돈이)

水陸草木之花(수륙초목지화)가 可愛者甚蕃(가애자심번)하니,
물이나 땅에 자라는 초목의 꽃은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다.

晉陶淵明(진도연명)은 獨愛菊(독애국)하고 自李唐來(자이당래)로 世人(세인)이 甚愛牡丹(심애모란)이라.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때부터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꽃을 매우 사랑하였다.

予獨愛蓮之出於(여독애련지출어) 泥而不染(니이불염)하고, 濯淸漣而不妖(탁청련이불요)하고, 中通外直(중통외직)하며,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의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不蔓不枝(불만불지)하고, 香遠益淸(향원익청)하며, 亭亭淸植(정정청식)하여 可遠觀(가원관)이요, 而不可褻玩焉(이불가설완언)아로다.
넝쿨도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지며, 꼿꼿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만만하게 다룰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

予謂菊(여위국)은 花之隱逸者也(화지은일자야)요,
내가 평하건대, 국화는 은일을 상징하는 꽃이요,

牡丹(모란)은 花之富貴者也(화지부귀자야)요,
모란은 부귀를 사랑하는 꽃이며,

蓮(연)은 花之君子者也(화지군자자야)라.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다.

噫(희)라! 菊之愛(국지애)는 陶後鮮有聞(도후선유문)이요,
아아!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蓮之愛(연지애)는 同予者何人(동여자하인)고?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牡丹之愛(모란지애)는 宜乎衆矣(의호중의)리라.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연히 많으리라.


《周濂溪先生全集(주렴계선생전집)》卷之(권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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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鄭道傳) 금남잡제(錦南雜題) / 삼봉집 제4권 설(說)

景濂亭銘後說   경렴정 명의 후설    1376


겸부(謙夫) 탁선생(卓先生 卓光茂)이 광주(光州) 별장(別莊)에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고, 가운데 흙을 쌓아 작은 섬을 조성하고 그 위에 정자를 건축한 다음, 날마다 오르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였다. 익재(益齋) 이문충공(益齊李文忠公 李齊賢)이 그 정자를 경렴이라고 작명하였는데, 이것은 대게 염계(濂溪 周敦頤)가 연꽃을 매우 사랑한다는 뜻을 취하여 그를 경앙(景仰)하고 사모(思慕)하고자 한 것이리라. 대저 그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 물건에 마음을 쓰게 된다. 이것은 느낌이 깊고 후한 것이 지극하다.

일찍이 ‘옛 사람은 각자 사랑하는 하초가 있었다.’고 말한다. 굴원(屈原)의 난초(蘭草), 도연명의 국화(菊花), 염계의 연꽃이 그것으로 각각 그 마음에 있는 것을 꽃에다 비유 하였으니 그 뜻은 매우 은미하다 하겠다. 그러나 난초에는 향기로운 덕이 있고, 국화에는 은일(隱逸)의 높은 것이 있으니, 두 사람의 뜻을 엿볼 수 있다. 또 염계는 ‘연꽃은 꽃 중에 군자이다. 연꽃을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분인가?’ 라고 말했다.

대게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을 남과 함께하는 것은 성현(聖賢)의 용심(用心)이며, 당시 사람들이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탄식(歎息)하고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오기를 무궁한 세월 동안 기다렸으니, 진실로 연꽃의 군자다움을 알게 되면 염계의 즐거움을 거의 얻을 것이다. 그러나 사물을 통하여 성현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황노직(黃魯直)은 ‘주무숙(周茂叔 염계의 字)의 흉중은 쇄락하여 맑은 바람 갠 달과 같다.’라고 말하였다.

정자(程子)는 ‘주무숙을 본 뒤로 매양 중니(仲尼)와 안자(顔子)의 즐거운 곳과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었다. 그 뒤로 풍월을 읊으며 돌아오는 것이「나는 증점(曾點)을 허여(許餘) 한다.」는 뜻이 있었다.’ 라고 말하였다.

여기에 도전(道傳)은 혼자 생각인데 염계를 경앙하는 방법이 있으니 모름지기 쇄락한 기상을 알아 얻고, ‘증점을 허여한다.’ 하는 뜻이 있은 연후에 그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충공(文忠公)이  다음과 같이 명(銘)하였다.

     鉤簾危坐(구렴위좌)     발 걷고 꿇어앉으니,

     風月無邊(풍월무변)     풍월이 가이없네.

이 한 구절(句節)은 옛 사람이 단정한 공적 안문(案文)이다. 어떻게 해야 그 정자에 한 번 올라 겸부(謙夫)와 같이 참여할 것인지 모르겠다.


http://cafe.naver.com/sb1337.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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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16권 칠언율시(七言律詩)

경렴정(景濂亭) 익재소명(益齋所名)

탁광무(卓光茂)

사람들 앞에 억지 웃음 짓기 싫어 / 懶向人前强作顔
온종일 수정에서 청산만 바라보네 / 水亭終日對青山
우리 집의 기호는 시속과는 다르네 / 吾家嗜好與時異
이 땅의 청한은 세상 것이 아니로세 / 此地淸幽非世閒
풍월은 사가 없으니 가는 곳마다 푸짐하고 / 風月無私隨處足
천지는 도량이 커서 한가한 나를 내버려두네 / 乾坤大度放予閑
만사를 다 잊고서 멋대로 거닐다가 / 逍遙自適忘機裏
누워서 공중에 돌아오는 지친 새를 보노라 / 臥看長空倦鳥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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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tw | 2009/08/04 06:44 | 광안 학맥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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