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가짜라는 레베데프 소장의 결정적 증언 김일성의 마적행각

『레베데프 비망록』


김일성이냐 박헌영이냐/레베데프 당시 정치사령관 첫 증언 [중앙일보] 입력 1991.11.30 00:00 | 종합 1면

『북한 인민군대사』 펴낸 전육사교장 장준익씨 : 1991년 레베데프의 증언 청취


레베데프의 증언 : 김일성 발탁은 베리아가 주도
김일성이 가짜라는 결정적 증언
레베데프(Nikolai Lebedev, 1901 – 1992) 소장 부음 기사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개명하여 이용하려 한 건 실체가 불분명한 전설적 김일성 장군의 명성
전설적 김일성 장군은 보천보 사건 때문에 알려진 것이 아님.
보천보 사건 자체는 별로 아는 사람도 없었을 뿐 아니라 김일성 단독 아닌 최현과 공동 작품
동흥습격사건의 이홍광은 그의 사후 이홍광 부대를 만들 정도로 중요시 되었으나
보천보 사건은 그 정도도 되지 못했다.
김일성 장군 아닌 이홍광 장군, 최현 장군의 전설은 왜 생겨나지 않았나?
전설적 김일성 장군은 도술을 부린다, 축지법 쓴다는 식으로만 알려져 있고, 구체적 항일 공적이 알려진 것은 없으니 같은 이름의 김일성이 행한 보천보 사건을 김성주 자신의 공적으로 조작하여 내세운 것임.
보천보 사건은 김일성의 공적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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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의 지도자라면 지도자로서 한 일로 평가받아야 정상인데, 김일성의 경우는 그 점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능력이 아닌 외세의 선택으로 지도자가 되었으니 지도자가 되는 과정도 역사상 최악입니다.
지도자가 되기 전의 빨치산 활동이란 것도 엄청난 민폐를 끼쳤으니 정상적인 항일 투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뭐 하나 봐 줄만한 것이 없는 인물인데도 남한의 넋나간 자들이 그를 미화하려다 보니 지도자로서 한 일이나, 지도자가 되는 과정의 문제점은 감추고, 대단한 항일 투쟁을 한 것처럼 조작하는 거지요. 그 핵심이 보천보 사건이라, 그 실체를 뿌리 끝까지 파헤쳐 보자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김일성의 진위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지도자 감이 아닌 인물이 억지로 무리해서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저명한 인물이었다면 그의 행적에 대해 이런 진위 논란이 벌어질 수도 없을 겁니다. 어느 저명한 독립운동/항일투쟁 지도자에게 이런 진위 논란이 벌어지나요?
김일성의 경우는 어디서 뭐하던 사람인지 모르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 나 이런 사람이오 하니 논란이 벌어진 겁니다. 해방 후 귀국한 이승만 박사나 김구 선생이 어디서 뭐 하던 사람인지 국민들이 몰랐습니까?
보천보 사건도 별 중요성이 없는 사건이었기에 주도한 인물의 신원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건이었다면 주도 인물의 신원이 애매하게 남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주도 인물이 누구인지 논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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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가짜 김일성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는 박길룡 외무성 부상의 증언.


김일성이 가짜라는 결정적 증언

 

평양에 주둔한 소련 25군 정치사령관 레베데프(Nikolai Georgievich Lebedev, 1901 – 1992) 소장이 죽기 1년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김일성이 가짜가 맞다는 결정적 증언을 하였다. 이 증언만으로도 김일성은 100% 가짜임이 확실하다. 소련군에서는 첸지첸(친츠촌?) 등으로 불리다, 입북할 때부터 명성만 있고 실체는 불분명한 전설적 김일성 장군을 이용하기 위해 김일성이란 이름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소련군 장성들도 이것이 절묘한 신의 한 수라고 감탄하였다.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에서는 군중들이 김일성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단상으로 쳐들어와 몽둥이까지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다. 김일성이 가짜 행세하기도 쉽지 않았던 것이지만, 소련군의 무력을 등에 없고 강행해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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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환영대회(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6) 중앙일보 1991년 09월 05일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 하 전2책,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편 중앙일보사/1992년) 상권 pp.88~89

소련군은 1개월여의 준비 끝에 김일성을 군중 앞에 내세울 때가 됐다고 본 것이다. 이 대회의 막후 지휘자였던 레베데프의 증언은 당시 소련의 속생각을 드러내 주고 있다.

숨김없이 말한다면 김일센의 본명이 김성주(金成柱)였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인민들에게 잘 알려진 위대한 반(半)전설의 애국 영웅 김일성장군을 상징하기 위해 김일센과 그의 부하, 그리고 당시 북한 내 공산주의자들과 상의해 「김일성장군」으로 소개했던 거지요. 대회 전날인 13일밤 김일센이 양복 차림으로 왼쪽 가슴에 소련훈장을 달고 찾아와 「사령관님, 이 복장으로 내일 대회장에 나가 인민들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명연설을 하겠습니다.」면서 으쓱거리더군요.

나는 소련훈장을 달고 나가면 군중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으니 떼고 나가라고 지적했지요. 그러나 연설장에서 보니 훈장을 달고 나왔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김일센의 연설원고는 우리 사령부에서 작성해 준 것입니다. 소련장교가 소련어로 작성해 고려인이 한글로 번역(외무성 부상 박길용박사는 시인 전동혁(田東赫)이 번역한 것이라고 증언)한 것이지요. 이날 연설에서 조만식은 조선을 해방시켜 준 데 대한 감사와 민주조선 건설을 위해 투쟁해 나가자고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일센의 연설이 끝나자 군중들이 주석단 앞까지 몰려와 「가짜 김일성이다」며 소동을 벌였지요. 조금은 난감했습니다. 주최측은 군중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몽둥이를 휘두르기까지 했으니까요. 이같은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대회 후 기자들을 만경대 김일센 생가로 데리고 가 그의 조부모·숙부와 숙모 등 친·인척 모두를 소개했지요. 그랬더니 인민들의 여론이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이 대회 준비는 항일 빨찌산파 및 국내 공산주의자들에게 실무적인 일을 맡겼지만, 蘇25軍 정치담당관 메크레르 중좌(83·모스크바 거주)와 고려인 출신 통역관 강미하일 소좌(사망)가 배후에서 움직였다. 1주일 동안 원고도 만들고 복장 마련 등 연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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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연재된 위 내용은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 하 전2책,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편 중앙일보사/1992년)"으로 간행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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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외교비사 (박길용, 김국후,  중앙일보사, 1994) : 박길용 (朴吉龍, 1920~) 북한 외무성 부상

1. 김일성이 북한 지도자가 된 과정 (pp.24~25)
[김일성은 1945년 9월 19일 원산항으로 입북하여, 평양으로 왔고, Lebedev 소장을 찾았다.]

김일성이 나의 방문을 나서는 순간 극동사령부의 스티코프 중장(후에 대장)으로부터 암호 전문이 날아왔다. 김일성을 당분간 인민들에게 노출시키지 말고 물밑에서 은밀히 정치훈련을 시키라는 내용이었다. 나의 감은 적중했다.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만드는 작전에 들어갔다. 특수선동부장 코비첸코에게 김일성의 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히고 가슴에 달고 다니는 적기 훈장도 떼어 내라고 지시했다. 일부 북조선 인민들의 반소감정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서 였다. 박정애와 김용범은 두 벌의 신사복을 구해 오는 등 붉은 군대 사령부 사업에 적극 협력했다.

 

사령부 첩보국과 특수선동부는 김일성의 출생지에서부터 가족사항, 학력, 성분, 중국공산당 입당과 활동사항, 빨치산 운동 등 그에 대한 일체의 신상조사를 끝냈다. 우리는 그의 본명이 김성주(김성주)였고, 만주지방에서 항일 빨치산 운동을 벌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로 혁혁한 공을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진짜 항일 빨치산 운동에 공을 세운 또 다른 ‘김일성 장군’이 있다는 ‘풍문’이 조선 인민들에게 널리 퍼진 가운데 조선 인민들은 해방된 조국에 그 장군이 개선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두뇌 회전이 빠른 정치사령부의 젊은 장교들은 바로 여기서 ‘미래의 수령’ 만들기 작전을 찾아야 한다고 지도부에 건의했다. 이 아이디어는 핵심지도부를 놀라게 했다. 훗날 북조선 민주기지 건설의 총 지휘자 스티코프 장군도 이 아이디어는 ‘조선의 민주기지 깃발’이라고 창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우리 붉은 군대는 김일성을 조선인민들 속에서 ‘전설의 영웅’으로 불리던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시켜 북조선의 ‘위대한 수령’의 계단에 오르게 했다.

그를 수령으로 올려 놓기까지 붉은 군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이를 잘 알고 있는 김일성도 소련군이 평양에서 철수할 때까지 소련과 소련공산당, 그리고 소련군에 대해 최대의 존경과 감사함을 갖고 행동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동의를 받아 조선전쟁을 끝낸 후부터 김일성의소련관은 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의 통치술 역시 탈색된 사회주의로 흐르고 있음을 모스크바로 돌아와 지켜보고 있다. 그렇지만 김일성을 오늘의 ‘위대한 수령’으로 창조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나는 결코 지난 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46년(1991년 가을 현재)이 지난 지금 사회주의 군대의 정치장교에 앞서 인간적으로 조만식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박헌영에게는 같은 공산주의자이면서도 의리를 배신했던 점(가까운 미래에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는 했지만…)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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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평양으로 돌아온 김일성과 평양 주둔 제25군 북조선 정치사령관 레베데프(Nikolai Lebedev, 1901~1992)소장과의 대화가 재미있다. 생전에 레베데프 소장이 중앙일보 취재팀에게 밝힌 대화내용을 들어보자.

"김일성: (레베데프)장군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빨치산 부대도 일본과의 해방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해주십시오. 우리는 여러번 이 전쟁에 참전할 수 있도록 하바로프스크 사령부에 건의했으나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레베데프: 그게 무슨 말인가? 조선을 해방시킨 것은 소련의 제25군과 태평양함대 뿐이다. 제88정찰여단 빨치산 부대의 단 한 명도 대일본전에 참전하지 않았고 총 한 번 쏘지 않았다. 절대로 역사를 바꿀 수 없다."

[김국후,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아카데미, 2008) p.77 : 레베데프와의 인터뷰 (모스크바, 1991.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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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4일 평양의 운동장에서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 뒤의 맨 오른 편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는 사람이 레베데프 소장이다. 레베데프 소장의 바로 옆에 조만식 선생이 서있다. (아래쪽 사진)


아래는 1947년 가을 평양시내 소련25군사령부 정원에서 가진 민정담당인 로마넨코 소장(한 가운데 주머니에 손 넣은 사람) 환송식 때 찍은 사진. 그 우측은 정치담당인 레베데프 소장. 그 뒤쪽에 김일성과 김책(金策)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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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평양에서 대중들이 김일성을 유능한 정치 지도자로 받아들이도록 그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공작을 담당했던 소련군정 핵심 장교 Grigory Mekler(1909~)는 1944년 소련군에 있는 김일성을 처음 만났고, 그가 죽은 유명한 김일성의 이름을 빌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Grigory Mekler(1909~)는 당시 계급이 중령으로 해방후 북한에 들어와 1년여를 김일성과 같이 다니며, 정치적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법을 교육시킨 사람(spin doctor)이다. 그의 인터뷰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Soviets Groomed Kim Il-Sung for Leadership Vladivostok News, January 10, 2003

    실제로 Mekler는 1944년에 김일성을 만났는데, 그때 이 조선인(김일성)은 러시아 극동의 하바로프스크 부근에 있는 중국인과 조선인 게릴라를 위한 소련군 캠프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소련군 장교(Mekler)는 조선인 부대를 지휘하는 김(일성)이 그 이름을 전투 중에 죽은, 한국인 게릴라들의 대단한 존경을 받던 전임(前任) 지휘관의 이름에서 빌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In fact Mekler had met Kim Il Sung in 1944, when the Korean was training at a Soviet army camp for Chinese and Korean guerillas near Khabarovsk in the Russian Far East. The Soviet officer found out that Kim, who then commanded a Korean battalion, had borrowed his name from the previous commander. Kim's predecessor, highly respected by Korean guerrillas, was killed in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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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트 바신(Leonid Vassin)의 평양 소련군정에 대한 증언 資料

After the Soviet Union collapsed, it became clear just how clumsily the Soviets had installed Kim Il Sung. “We created him from zero,” boasted NKVD Officer Leonid Vassin. "We did very crudely." Vassin worked in the 7th Department of Special Propaganda of the 25th Army in charge of military propaganda in enemy territory, and says he was in contact everyday with Kim during his first six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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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Il-sung's secret history Mark O'Neill, South China Morning Post 17 October, 2010

On October 14, 1945, over 100,000 people gathered in downtown Pyongyang to celebrate Korea's liberation from Japan by the Soviet army. 'Now is the moment to introduce you to the new leader of your country, comrade Kim Il-sung,' said the Russian general on the podium.

A ripple of excitement spread through the crowd, delighted to be rid of 35 years of Japanese secret police, rationing and wartime controls. For the first time, they would see the legendary guerilla leader who had fought the Japanese army for more than 20 years in Korea and Manchuria.

Up to the podium stepped a handsome man in his 30s, with a plump face and a full head of hair. People in the crowd looked in disbelief at one another: this young man could not be the real Kim, who would be in his 50s, with fading hair and skin hardened by years of living in the mountains and caves of northeastern China.

This is the extraordinary story of how Josef Stalin picked an obscure officer in the Red Army to be the ruler of the new country his army had occupied and grafted onto him the life of its most famous guerilla leader, to give him an authority and credibility he did not possess.

This story only came to light after the fall of the Soviet Union in 1991, when the Russians involved in establishing the new state of North Korea could speak to foreign scholars and journalists. A detailed history of Kim and his government was also written in My Struggle with Kim Il-sung, published in Japan by Park Gab-dong, the secretary general of a government-in-exile, the Korean Democratic Unity Salvation Front, that was established in Moscow in January 1992.
 
http://botw.egloos.com/11188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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