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 韓載德 - 1962 한국 및 미국 자료

북한총감(北韓總鑑, 1968), 한국전쟁사(韓國戰爭史, 1967), 한재덕(韓載德, 1962)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4)-한재덕 : 보천보 김일성 맞다.
김일성 직속 기자 한재덕(韓載德)

Prints: Master Photographic Files, Personalities, 1948-1973
귀순한 한재덕 사진

한재덕(韓載德, 1911-1970)은 북한의 언론인으로 해방 직후 김일성이 평양에 처음 왔을 때부터 수행하며 그를 미화하는 보도를 담당했던 사람이다. 초기의 김일성 미화 작업에도 참여하였고, 김일성 가짜설이 퍼지자 이를 반박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6.25 전쟁이 거의 끝난 1953년에 공작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살이도 하였다. 석방후 북한으로 가지 않고 1959년 2월에 남한으로 귀순하였다. 그는 해방직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해 가는 내막을 상당히 잘 아는 사람으로 이를 폭로하는 책도 쓰고, 신문에 기고도 많이 하였다.

김일성 직속 기자 한재덕(韓載德)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4)-한재덕 : 보천보 김일성 맞다.
北韓總鑑 '45-'68 (北韓年鑑刊行委員會 編 / 共産圈問題硏究所 / 서울 1968) - 한재덕(韓載德)의 글

해방 직후 북한에서 정치적 주도역할은 해 낸 사람은 조만식이었다. 그는 한국의 간디로 불렸다. 일본 메이지대 출신의 기독교장로인 조만식은 온건한 정치신념을 지닌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다. 평남 건준의 위원장에는 조만식이, 부위원장에는 역시 기독교 장로였던 오윤선이 추대됐다. 20명이 넘는 북한의 초기 건준 위원 가운데 공산주의자는 한재덕(韓載德)과 이주연 2명뿐이었다. 둘은 경험이 풍부한 운동가였다. 이후 한재덕은 간첩으로 일본에 파견돼, 거기서 전향해 많은 자료들을 우리 연구자들에게 제공해 줬다.(한재덕, ‘김일성을 고발한다’, 서울, 1965) 그러나 한재덕이 1970년에 죽은 건 북한문제에 관심 있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큰 손실이다.

우리들의 時代(시대) <133> 1985.03.14. 경향신문 10면
평안남도 건국 준비 위원회(平安南道建國準備委員會) 위원장은 조만식(曺晩植) 선생.
『부위원장 오윤선(吳胤善), 총무부장 이주연(李周淵), 치안부장 최능진(崔能鎭), 선전부장 한재덕(韓載德)‥‥』 발표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은 이주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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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실상을 폭로하는 그의 저서로는 "金日成을 告發한다 (內外文化社, 1965)", "金日成과 北傀의 實相 (共産圈問題硏究所, 1969)" 등이 있으나, 절판되었고,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 되어 있다.

金日成을 告發한다 : 朝鮮勞動黨治下의 北韓回顧錄 / 韓載德 著 서울 : 內外文化社, 1965 - 국회도서관
金日成을 告發한다 : 朝鮮勞動黨治下의 北韓回顧錄 / 韓載德 著 국립중앙도서관

金日成과 北傀의 實相 / 韓載德 著 서울: 共産圈問題硏究所, 1969 - 국립중앙도서관



"金日成을 告發한다"는 1962년 5월부터 100회 가까이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네이버를 검색하면 볼 수 있으나, 일일이 모두 검색하는 것이 상당히 번거롭다.


6회에 김일성 장군이 10여년 전에 죽었다는 말이 나옴 (1945년 기준).
9회 : 10/14 김일성 환영대회
14회 : 소련군의 만행
20회 : 김일성 가계 - 김형직, 김형권 - 민족진영. 공산주의와 무관
22회 육문 중학, 중국공산당 입당.
24회 : 보천보 사건 - 북김 소행, 김일성 이름 도용. 진짜 김일성은 1931년경 사망
26회 : 김일성 처에 대한 이야기 (김정숙은 2~3번째, 체포된 처는 담당 경찰의 첩이 됨, 김일성을 찾았다가 혼줄이나서 쫓겨남.
28회 김영환 가명, 김일성, 김책, 최용건 따위는 비밀선거로는 공산당 간보로 선출되지 못할 인물
31회~33회 현준혁 암살
48회 최용건, 김책 - 김책의 창피한 죽음.


* 10월 12일 또는 그 전날 요정 다마야 모임, 평남인민정치위원회와 김일성 상견례 : 2, 3, 4회
김성주는 장군이라 불리지도 않던 때 : 5회
* 이종현, 김일성 사망, 제사 지냄 : 6회

김일성에게 장군 칭호를 붙여준 한재덕 / 장개석이 친구라는 말
모임은 10월 13일 저녁 평화회관- 김일성 장군 사망 소식에 추도식 가졌다고...


* 김일성 데뷰- 오영진 글 인용 : 9회, 10회, 11회
* 장군 칭호 수여 : 13회
* 만경대 방문 : 15, 16, 17, 18회 - 개선기에선 10/14라 했으나, 다음날 10/15일이라 함.
5. 북괴발간 역사서적 비평 /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韓載德) 『北韓의 國史觀 批判 論文集』 (서울: 國土統一院, 1977, pp. 359 ~ 376) pp. 373 ~ 375

* 김일성 찬양 문학, 개선기 / 북한서 쓴 김일성 찬양 글 목록 : 19회
* 만경대 가계 이야기, 김일성은 칠골 외가 출생 : 20회
* 만주로 돌아가며 조국이 해방되지 않으면 안돌아 온다는 말은 한재덕이 창작 : 21회
* 중국 공산당원이됨. 중국에 충성 ; 22회
* 15년간 무려 10만회의 전투, 다소간의 전공이 있다 해도 중국공산당원으로서 한 것. 모택동의 졸로 뒷꽁무니 따라 다닌 것 : 23회

* 보천보 전투, 모택동의 축전에서 조선인의 피로서 중국 원조했다고 함. : 24회
김명호 교수의 북-중 교류 60년 ⑧ 중국 국공내전과 북한의 지원

[토론회]친일인명사전 배포, 어떻게 봐야하나?
p.12 김용삼, 모택동 전문 인용
다시 말하면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의 목표는 중국의 ‘해방’과 공산화, 그리고 중화조국의 옹호와 일본에게 빼앗긴 만주(동북)지역의 회복이었다. 중국공산당원이자 중국 국적자인 김성주의 임무도 그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모택동은 1962년 4월 15일 김일성의 50주년 생일에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은 축전을 보냈다.
“중국 인민에게 있어 곤란했던 1930년대에 당신은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을 인솔하여 피로써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원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김일성이 중국 공산당원으로서 중국 공산당 혁명에 헌신했었던 사실을 잊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던 셈이다.


중공 북한 관계 10년사 경향신문 1971.07.13
1962년 4월 23일 중공방문 단장 팽진에 훈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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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동아일보 연재 기사 초반의 일부 링크이다.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 : 1962.05.04
金日成(김일성)을 告發(고발)한다 (2) : 1962.05.05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3)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4)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5)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6)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7)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8)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9)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0)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1)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2)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3)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하다 (14)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5)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

  • 1962.05.04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 (1) 韩載德(한재덕) 往年(왕년)의 金日成直屬記者(김일성직속기자)가 暴露(폭로)하는正確(정확)·生生(생생)한記錄(기록) "해치우라"는密命(밀명) 金日成(김일성)은 나를...

金日成(김일성)을 告發(고발)한다 (2)

  • 1962.05.05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發(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2 眞正(진정)한解放(해방)단지10日(일) 不幸(불행)의씨!蘇軍進駐(소군진주) …愛國心(애국심)·自治力誇示(자치...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3)

  • 1962.05.06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 3 韩載德(한재덕) 民族陣營主導權(민족진영주도권)박탈 人民政治委員會(인민정치위원회)조직 ……蘇軍政(소군정)의첫事業(사업)은大同團結(대동단결)의破壞(파괴)…… 〈...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4)

  • 1962.05.07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4 韩載德(한재덕) 30代(대)의靑年金日成(청연김일성) 처음으로나타나다 『로마넹코』軍政官紹介(군정관소개)로懇談會(간담회)

평양(중앙)우편국에서「서기산」(해방후얼마있다부터는「해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으로 올라가는 바로뒷쪽길옆에 자리잡은「다마야」라는 요릿집은八(팔)·一五(일오)전날밤까지 남아서 영업을한 평양에서한 둘째를 다투던 큰일본 요정이었다. 이날저녁 여기에 임시로 꾸며놓은 자리에서「평남인민정치위원회」위원들과 金日成(김일성)이 첫 대면을하는「간담회」가 열린다는것이었다. 이 자리에 내가도착한것은 이미 어둠이거리를 뒤덮은 상당히늦은시간이었다. 당시나는「평남인민정치위원회」의 공산당측 위원의한사람이기는 하였으나「건국준비위원회」의해체로 선전부장을 그만둔이래로는 신문을하나발간해보려는 일념으로다른직책을 가지고있지않았고 또 가장...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5)

  • 1962.05.08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蘇聯(소련)이 내민『金日成(김일성)』
너무나 초라한 모습
…모두 눈을 疑心(의심)했으나 별수없어…

金日成(김일성)이라 불리운 三○(삼십) 대의 젊은이는 자그마한 몸집에 얻어 입은 듯한 잘 어울리지 않는 밤색 양복을 입어 어딘지시골떼기 청년같이 보였으나 검게 거을린 얼굴과 쏘련군 젊은 장교들이 많이하는 식으로「스포츠」형으로 짧게 깍은 머리는 그를 무척 경강스럽게 보이게 하였다. 그러나 어느 모로보나「장군」이라는 인상은 찾아볼 흔적도 없었다. (사실 이때는그들 사이에서조차「장군」이라고 불리우지도 않던 때이다. ) 더우기나 연세가 이미 노경에 이르렀을 것이나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이 늠름하다는 전설적 존재로 되어있는 그 金日成(김일성) 장군으로 상상되는 풍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좌중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쏘련군이 들어와서 이미 두 달동안,그 사이 그들의 하는 일과 억지를 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써 직감적으로「이것은 쏘련이 내세우는 金日成(김일성)이다!」하는 판단과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타협이요 체념이기도 하였다. 아니라고 해보았대야 별 수없는 일이요 그러니 그렇게 알면 그만이아니냐!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서는것이었다. 더우기 공산측 위원들에게 있어서는 쏘련 상전이 내세우는 일에 대하여 의심을 갖는다는 것조차가 죄악시되는 일이었다.

나로 말한다면 나는부끄러운 일이기는하나솔직히 말하여 그당시에있어 金日成(김일성)이라는존재의 연령에 관하여는아무 예비지식도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이날밤 金日成(김일성)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나이젊다든가하는 점보다도 그인품·풍채 자체가 예상하였던것보다 너무나초라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인물이나 풍채로 말한다면,그날金日成(김일성)과같이 온 또한사람의 청년이 훨씬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는文日(문일)이라도 金日成(김일성)의소련말 통역비서였다. 연령도 비슷하고 몸집도 비슷한 이文日(문일)은이당시부터 마치 쌍동이와도 같이 金日成(김일성)과붙어다니였다. 그러데그는 괴뢰「공화국」이조직된 얼마후부터 행방불명이되었는데 숙청잘하는 金日成(김일성)이 이文日(문일)까지를 숙청하였는지는알수없으나 당시로서는金日成(김일성)의 그림자같은존재였다. 그러나 그당시金日成(김일성)이 쏘련말통역비서를데리고 다닌다는것은 순전한「제스츄어」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때金日成(김일성)은자기자신이 통역 노릇을해도 좋을만큼 쏘련말에능통하였기때문이다. 그래도 이날밤,이자리에서도 金日成(김일성)은「로마넹코」와의 대화에있어일부러 못알아듣는듯이文日(문일)의 통역을 거치느라고 애를쓰는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후에알게된일이지만 사실은이날밤,金日成(김일성)과 文日(문일)은 이집에 훨씬전에와서 별실에 대기하고있었다한다. 그러면서「로마넹코」소장의 도착이 늦어진 까닭에 그보다 뒤에 나타나기위하여,또보다 연출효과있는 등장을 하기위하여 그와같이 나타나기가 늦어진것이었다. 金日成(김일성)의 등장은 이와같이 첫날 비공식좌석에서부터 다분히 연극적이었던것이다. 먼저「로마넹코」소장이「다와리시치·김일쎈」을소개한다고 그육중한 몸집을일으켰다.그는 마치金日成(김일성)이 일제를 반대하여 싸운 우리나라 최대의 애국자요 영웅인듯이 장황하고 거창한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니「민족적지도자」로 받들라는소리였다. 이런것이 얼마나 허황한것인가에 대하여는차차로 밝히려하는바이지만,하여간 만일 그가 그런존재라면 그것은 우리민족의 일이니우리민족 자신이 알아서 할일이지 왜 외국사람,쏘련사람이 그것을 우리에게 소개하고떠맡긴단 말인가? 그것은「로마넹코」의 춤뛰는 열변을 듣으면서 누구나가첫째로반문하고싶은 느낌이었을것이다.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6)

  • 1962.05.09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 質問(질문)의 화살 集中(집중) 쩔쩔매는『金日成(김일성)』 …『祭酒(제주)도로찾아야겠다』고도… 〈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6 韩載德(한재덕)

「로마네ㅇ코」소장의소개의 말이 끝난다음曺晩植(조만식)선생은「평남인민정치위원회」위원장으로서 환영의 인사를 한마디 하지않을수 없게되었다. 완강한 민족주의자인동시에 너그러운 원만주의자라고도 할수있는曺(조)선생은 마지 못하여金日成(김일성)을 환영한다는형식적인 인사를 간단히몇마디로넘겨버리고 좌우간 앞으로 우리들이다함께 힘을다하여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합심합력해 나아가자는것을 차근차근히강조하였다.

金日成(김일성)의 답사는 비교적 간단하였다. 그는이때는 원고를 들지않고 따로한것을 외우는듯한 연설을 하였는데그도 그가운데서 각계각층,전민족의 총력결집을 열심히 부르짖었다. 이것은 그후도 그가 몇번, 몇십번 되풀이하여부르짖은것이다.그러나 그가말하는 전민족의 각계각층의총력결집이니 단결이니 하는것이 실제적으로 어떠한것인지는 앞으로구체적으로밝혀질것이다.

술잔이 돌기시작하고주로공산당측 위원들이일어서서 벌써부터 아첨에가득찬 환영사를 경연(競演(경연))하였다. 민족진영 위원들도 몇사람일어서서「테불·스피취」를하였는데 그것은은연중 비꼬는말 꼬집는말이 섞여있는 것이었다. 예를들면 李宗鉉(이종현)씨는 이런말을했다. "우리는 벌써 십여년전에 金日成(김일성) 장군이세상을 떠났다는 말을듣고 몇몇 동지끼리 몰래 모여서 추도제사까지 지냈는데 이제 살아돌아온 金(김)장군을 눈앞에 보게되니 그때올렸던 제주(祭酒(제주))는,이자리에서 도로 찾아야겠소" 이것은 분명히 해방 전까지 싸우다 왔다는 金日成(김일성)에게는 가슴이 찔리는 말이 아닐수 없었다. 이어서 술잔과 함께 金日成(김일성)에게 질문의 화살이 집중되었다. 이당시는 본시 좀 촌뜨기같은데가 있던 그는 더욱 어리둥절해 쩔쩔매는 꼴이었다. 그는 어려운 대답이나 발언을 할 때는 매양 옆의「로마넹코」소장의 눈치를 엿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연히 文日(문일)이라는 통역을 끼워놓았으니 직접 대화도 할 수 없고,자못 난처한 모양이었다.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7)

  • 1962.05.10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7 韩載德(한재덕) 民族(민족)의悲劇告(비극고)하는 世紀(세기)의政治挾雜劇(정치협잡극) 1945년10월14일…所謂(...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8)

  • 1962.05.11
  • 동아일보
  • 2면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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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8 韩載德(한재덕) "사람의 마음까지정복할순 없는것" 曺晚植先生(조만식선생),意味深長(의미심장)한熱辯(열변) ...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9)

  • 1962.05.12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9 韩載德(한재덕) 威嚴(위엄) 없는 촌뜨기 『가짜』에 크게失望(실망) 첫演說(연설)부터 거짓말만… 첫演說(연설...
오영진의 글 인용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0)

  • 1962.05.13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⑩ 韩載德(한재덕) 二次大戰參戰記章(이차대전참전기장)인 赤旗勳章(적기훈장)달고演劇(연극) 『抗日鬪爭(항일투...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1)

  • 1962.05.14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11 韓載德(한재덕) "事態(사태)는 다 글렀다" 牧丹峰(목란봉)밑에서 한숨 南韓(남한)으로가자!…이때決心(결심) ...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2)

  • 1962.05.15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12 韩載德(한재덕) 疑心(의심)많은『곰』蘇軍(소군) 新聞發行(신문발행)도 못하게 10月(월)15日(일) 비로소許可(...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3)

  • 1962.05.16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13 韩載德(한재덕)
난데 없는 『將軍(장군)』特進(특진)
蘇軍將校(소군장교)들도 感嘆(감탄)
이땅 共産黨(공산당) 아첨 技術(기술)에
「볼세비키」들의 계략은 적중하였다.
해방후 평양에서 처음 나온 신문, 「평남인민정치위원회」의 기관지 「平壤民報 (평양민보)」창간호는 낡은 윤전기로써는 미처 찍어낼 수가 없으리만큼 날개가 돋혀 뿌려졌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목마른 사람 냉수 마시듯 그것을 읽었다. 그것은 「다브로이드」판의 빈약한 것이었으나 문제의 인물 의문의 인물 金日成 (김일성)에 관한 기사로 가득 차있었다.
그의 「환영군중대회」를 취급한 제一(일)면「톺」기사에서부터 金日成(김일성)의 말에 의하여 그의 경력, 포부, 그의 고향, 가정일 등을 소개한 「내리다지」기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각면 전부가 金日成(김일성)에 관한 것으로 메워져 있었다. 그 선전효과는 가히 짐작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을 내놓고는 제목까지 거의 전부 내가 쓰고 꾸며낸 것이었다.
위에서 나는 「평양민보」는 내가 맡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발행 책임은 이전부터 그것을 위해 동서분주한 나에게 내려졌으나 어찌된 셈인지 「사장」도 「주필 」도 없이 나에게는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이 지니워지고 그러면서 그실 전부를 도맡아 해나가라는 것이었다.
후에 알게된 바이지만 이때 나를 「주필」로 임명하는 것을 반대한 것은 민족진영이 아니라 내가 속했던 공산진영이었다는 것이다. 즉 이때 공산당의 실권을 쥐 고있던 金鎔範(김용범) 부부와 張時雨(장시우)등 과격파들은 내가 그들이암살 한 玄俊爀(현준혁)과 가까웠을 뿐 아니라 曺晩植(조만식) 위원장등 민족진영에도 친근한 이가 많은 것을 일상 백안시 해오던만큼 나에게 유일한 신문을 맡기는 것을 꺼려하며, 그러나 신문을 만들만한 다른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에 신문발행의 사명을 주면서도 「주필」 자리는 비어 두고 「편집국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이「주필」로서는 서울서 내려온 李東華(이동화)씨가 임명 되었었는데 여기에도 미묘한 경위가 있으나 여기에서 그런 것을 이야기할 경황은
없다.
그러나 당시의 나로서는 그런 「자리」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었다. 나는 그렇듯 열망해오던 신문을 내가맡아 내게되었다는 산문광에 가까운 자기 도취와 한번 솜씨를 보여준다는 영웅주의도 다분히 작용한 「신바람」에 사로잡혀 다소과장 된 표현을하면 종횡무진한 활약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김일성 환영대회」기사도 부장이나 기자들게 씌워도 좋을 것이었으나 나는 굳이 자기 손으로 그전부를 썼다.
그만큼 신바람이 나 있고 감격하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본시 감격성이 많은 것이 탈이던 젊은 혈기에 찬 당시의 나의 글은 그 위에 金日成(김일성)을 자기의 손으로 내세운다는 값싼 감격에 더한층 약동하였다.
그 기사와 글 끝에서 나는 처음으로 金日成(김일성)을 「장군」으로 부르고 「민족적 영웅」으로 추켜 세웠다. 「凱旋(개선)」이라는 말도 이때 내가 처음 쓴 말이었다
金日成(김일성)이 처음 공개될 때에 그를 무엇으로 부를 것인가 하는 것이 잠시 논의되었다. 공산사회식으로 「동무」나 「동지」라고만 하는 것은 우상화하려는 「영도자」에 대해 너무 위신이 안선다. 「氏(씨)」라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선생」이라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고 남같이 「박사」라고 하기도 안되었다. 그래서 「소련」 사람들도 처음(「다마야」에서의 환영간담회 때만 해도) 그를 우리에게 소개할제 어제까지 자기 군대의 「소좌」로 있던 사람을 갑자기 「장군」 이라고 하는 것이 차마 쑥스러웠든지 아직 그저 「다와리시치· 김일쎈」(김일성 동무)라고 했었다.
그것을 李周淵(이주연)등이 金日成(김일성)의 본심을 받들어 궁리를 한끝에 「장군」으로 부르기로 한 것이다. 「소련」장군들도 이 땅 공산주의자들의 아첨 기술 에 새삼 감탄하고 만족하였다. 「마이용(少佐(소좌))·김일쎈」은 일약 「게네랄 (將軍(장군))·김일쎈」으로 수계급 특진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장군」칭호를 처음으로 활자(活字)화하고 지상으로 처음 「임명」한 것이 내가 된 셈이었다. 이래로 북한에서는 金日成(김일성) 밑에는 반드시 「장군」이란 「렛텔」이 달리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金日成(김일성)을 「장군」 으로 「임명」하고 영웅화한 것이 韓載德(한재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서부 터 유래한 것이다.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하다 (14)

  • 1962.05.17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하다 〈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手記(수기)〉 14 韩載德(한재덕) 『난장판』이룬平壤(평양) 골목마다板子城(판자성)쌓고 狂信(광신)…蘇軍(소군)을恩人(은인)...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5)

  • 1962.05.18
  • 동아일보
  • 2면
  • 정치
  • 기사(칼럼/논단)
金日成(김일성)을告発(고발)한다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記者(기자)의手記(수기)〉 ⑮ 『將軍凱旋劇(장군개선극)』造作(조작) 偶像化政策(우상화정책)이때부터 『스탈린』뺨칠 英雄主義(영웅주의) ...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6) 1962.05.19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7)1962.05.20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8) 1962.05.21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9) 1962.05.22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0) 1962.05.23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1) 1962.05.24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2)1962.05.25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3)1962.05.26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4)1962.05.28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4)-한재덕 : 보천보 김일성 맞다.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5)1962.05.29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6)1962.05.30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27) 1962.06.01




북한총감(北韓總鑑, 1968), 한국전쟁사(韓國戰爭史, 1967), 한재덕(韓載德, 1962)

南北(남북)의 對话(대화) <45> 괴뢰金日成(김일성)의 登埸(등장) (4) 서울 오라는 密書(밀서)거절

  • 1972.01.22
  • 동아일보
  • 4면
  • 정치
  • 기사(기획/연재)
... 또 國防部(국방부) 戰史(전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韓國戰爭史(한국전쟁사)에는 소련군정치사령관「로마넹코」少將(소장)에의해 소개된 金日成(김일성)은 一九一(일구일)○年(연) 韓日合邦(한일합방)이후부터 민족의 영웅으로 전해오는 金一成(김일성)장군의 이름音(음)을 도용한 金日成(김일성)이었다며 그의 正體(정체)를 다음과같이 적고있다.  |一九一二(일구일이)년 平南(평남)대동郡(군)고평面(면)남里(이)에서 金輔鉉(김보현)의 장남 金炯(김형)(亨(형))稷(직)의 아들로 本名(본명)은 金成柱(김성주)며 그의生母(생모)는 康班錫(강반석)이다. 生母(생모)의 아버지는 康敦煜(강돈욱)),그는彰德(창덕)학교 설립자로서 기독교 장로였다. 당시 三四(삼사)세의 金日成(김일성)은 金日成(김일성)부대라는이름으로「로마넹코」司令部(사령부)의 政治的目的(정치적목적)에서 민중에게소개되었고 실은一九三一(일구삼일)년에 中國共産黨(중국공산당)에入黨(입당)하여 北滿州(북만주)에서 유격대장을 지낸바있으며 日軍(일군)에쫓겨 수명의 동료와함께 一九四(일구사)○년代初期(대초기) 蘇領(소령)으로도망하여 그때부터蘇滿國境(소만국경)에 주둔하고있던「치스챠코프」軍團(군단)에서 軍事訓鍊(군사훈련)을받다가 四五(사오)년 소련군과함께入北(입북)했다. 이러한 젊은 金日成(김일성)을본 군중들속에서 가짜라는얘기가 튀어나오게되어 환영대회가 끝나기도전에 운집하였던 군중들은 흩어지게됐다. 韓載德(한재덕)씨(故人(고인)·해방당시... .. 했다. 궁리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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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otw.egloos.com/11199973
北韓(북한)은 어떻게變(변)했나?(1)解放(해방)18년
1963.08.15 경향신문 3면 정치 기사(기획/연재)
「選任(선임)」된以來(이래)의 그의黨的(당적)... 加盟(가맹)하고 1931年(연)에中國共産黨(중국공산당)에 入黨(입당)하였다.(可笑(가소)로운것은 그들의... 蘇聯共産黨員(소련공산당원)이되고 蘇聯軍隊訓練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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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숙은 2~3 번째 처, 첫째 처는 일경에 체포되어 그의 첩이 되었다고 함. 해방 후 김일성을 찾았다고.http://botw.egloos.com/11106358http://botw.egloos.com/11106262------------------------------------------------유성철은 아래 책에서 김일성의 첫번째 처 한성희가 일본 경찰에 체포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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