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국 정찰 부국장 / 최원 (崔元, 정찰국장) 망명 북한 관료 증언

金京錫(김경석)(前(전)북한노동당조직부장)
김창국 정찰 부국장 / 최원 (崔元, 정찰국장)
강수봉 (1925~?) = 呂政(여정)
이국진(李國鎭), 박우섭(朴禹燮), 김동규(金東奎) 인물 정보 종합

유성철(兪成哲, 1917-1995)
유성철(兪成哲, 1917-1995) 전 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겸 부참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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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소르킨 소장 관련하여 핵심적 증언을 한 崔元(최원)(소장·총참모부 군사과학국장)은 북한 인명 사전에는 없는 것 같으나 몇몇 사이트에 그에 관한 기록이 올라 있다.

유성철, 김창국, 최원 3인은 모두 소련의 고려인 출신이다. 유성철과 김창국은 88 여단의 김일성 대대에 소속해 있었고, 최원도 소르킨 소장휘하 88 여단에서 정보 업무를 보던 사람이다.
해방후 3인 모두 북한으로 들어가 유성철은 인민군 작전국장, 최원은 정찰국장, 김창국은 정찰 부국장으로 요직에 있었으나, 소련파 숙청 때 유성철과 김창국은 소련으로 돌아간 반면, 최원은 행방불명 되었다. 최원만 실종된 것은 그가 김일성과 소르킨 소장에 관한 비밀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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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국(1916~1981) 전 인민군 정찰국 부국장 - 88여단 생활
http://botw.egloos.com/11035018

김창국(1916~1981) 전 인민군 정찰국 부국장, 대좌
[김창국씨는 모스크바 인근 어느 정찰학교에서 2년간 교육받고, 1943년 7월에 쏘련 원동 변강 제2전선 정찰국 특수정찰여단(88여단)의 김일성 대대에 배치 받았다.]
p.5
88여단 여단장에는 중공부대에서 큰 공훈을 세운 항일투사 대좌 주보중이였으며, 참모장에는 시린쓰끼 중좌가 게섰고, 여단 정치부장에는 쎄료긴 소좌, 정치 부부장에는 중국인 장수창, 정치부 지도원으로 김책 선생이 게섰고, 최용권 상위는 제1대대 정치부대대장이였으며, 정치보위부장에 아르부소브 중좌가 게섰다. 그 당시 이 여단은 제2전선 정찰국장 소르낀 소장, 부국장에 안꾸지노브(Ankudinov) 대좌에게 배속되어 지시를 받았다.

p.14
1945년에 조국이 해방되자 김창국 선생은 뱌드쓰크 여단 본부를 출발하여 대대장 김일성 대위 인솔하에 1945년 9월 19일에 쏘련군 운송 군함 “뿌가쵸브”를 타고 원산항에 도착하였다. 북한에 도착한 이후 계속 인민군대 조직에 쏘련군 고문들의 통역원으로 중요한 활동을 하였으며, 1948년에 쏘군이 북한에서 나간 이후붙어(부터) 조선 인민군 정찰국 부국장 직무에 복무하였다. 당시 인민군 정찰국장에는 최원 소장이였던바 그도 역씨 쏘련 출신으로써 모스크바 정찰학교를 1942년에 나온 후 뱌뜨쓰꼬에 88정찰여단에서 김일성 대대장과 같이 복무하였다. 그는 사상 검토시 천단 투옥된 후 행방불명이다.
p.15
1950년 6월 25일에 남침으로 인한 동족상잔이 개치(시?)되자 창국 선생은 긴밀이 정찰활동을 진행하면서 아군 부대들의 전후 활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정찰국장과 작전국장은 입수되는 정찰 재료에 따라 작성한 지도를 상부에 제출하였지만 정찰국 부국장 김창국 대좌는 제일전선 부대들과 같이 동에서, 서에서 기동하면서 전투를 보장하였다. 1950년 12월에 김창국 대좌는 전선에서 지뢰 폭발로 인하여 중상을 당한 다음 중국에 수송되여 약 2개월간 치(료)를 받다가 조선에 귀환하였다가 다시 쏘련에 수송되여 약 3개월간 치료받고 완치는 안 되었으나....1958년 말에 쏘련으로 귀국하였다.
..........
1995년 10월 5일 김 니꼴라이

위 수기에서 최원이 고려인이고 88여단에 있었고, 정찰국장을 지냈으며, 최종 계급이 소장이었다는 것까지 확인이 된다.

위는  미 의회 도서관 자료.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고려인 81명 手記 The Library of Congress
북조선을 만든 고려인 이야기/장학봉...[등]저. 서울:경인문화사,2006에 수록
美의회도서관, 고려인 80여명 수기집 디지털화 보관 연합뉴스 2007-02-08

Naum Semyonovich Sorkin (Russian: Наум Семёнович Соркин; 11 February 1899 – 16 January 1980)
Mikhail Tikhonovich Ankudinov (Анкудинов Михаил Тихонович, September 9, 1905 – January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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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88 여단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했던 이동화 소좌의 수기

리동화(李東華, Yi, Tong-hwa, 1901-1980) 전 군의 총국장

pp.4~5
당시 리동화 선생의 군사계급은 소좌였다. 여단이 조직되어 몇 해 경과한 다음 김일성이 영솔한 일개 대대 정원 빨치산 부대는 동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일제 군벌의 토벌에 견딜 수 없어 1940년 쏘만 국경을 넘어 쏘련 영토에 월경하다가 쏘련 국경수비대에 붙잡혀 원동 울라지보쓰또크 부근에서 야영-유형 생활을 하면서 채포원에서 일하였다. 이에 대한 소식을 정보받은 주보준(주보중) 여단장은 군단 지도부에 보증을 엄변하고 김일성 대대 성원들을 전부다 이동식혀 자기 여단 일대대로 편입식혔다. 이것이 바로 1941년의 일이었다.

한인대대가 여단에 편입된 것을 리동화 선생은 아주 기뿌게 생각하였고, 김일성 대위와 아주 친절한 관계를 가지게 되였다.

이상의 조성된 환경을 리용하여 쏘련 정부 정찰 계통은 쏘련에 살고 있는 많은 한인 청년들을 증병하여 모쓰크바에 주재하여 있는 정찰학교에서 일년간식 강습식혀 88정찰여단에 파견하군 하였다. 그 결과 유성철, 정학준, 김창국, 리종언, 최원, 김예핌, 신붕남 등 많은 동무들이 파견되였으나, 그 중 많은 동무들은 정찰의무 수행 중 일제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세상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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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비화) 金日成(김일성)과 北韓(북한) : 呂政(여정) 手記(수기) <1, 2>

최원 (崔元)과 소르킨의 관계

│崔元(최원)(소장·총참모부 군사과학국장)의 증언
(崔元(최원)은 본래 蘇聯(소련)군 상위로서 원동사령부 솔로킨 소장 밑에서 정보사업을 했었다).

"소련원동방면군 사령부에서는중국만주 항일연군사람을 믿지않았지요. 사령관 부르가예프대장이나 솔로킨소장도 그랬소. 솔로킨소장은 베리야의 신임을 받는사람이었고 소련국가안전위원회의 원동방면책임자였는데 자주항일연군사람은 믿을수 없다고투덜거리면서도 金日成(김일성)은 믿을수있는 우리사람이라고 합디다. 솔로킨은 88여단의 내부상황을 金(김)장군을 통해 손금보듯 파악하고있었던 겁니다. 솔로킨소장이 金(김)장군을 우리사람이라고한것은 국가안전위원회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金(김)장군이 88여단에 있을때모스크바에 두번 갔는데 그것은솔로킨소장이 소련수뇌부에 金(김)장군을 추천했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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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봉 (筆名 : 呂政)의 수기에 1959년 자신이 체포되어 1960년 4월 10년형을 선고받고, 강계의 감방에 수감되었을 때 같은 감방을 쓰던 5인 중에  최원 소장이 있었다고 했다. 여정은 아마 이 시기에 최원으로부터 김일성의 88여단 시절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던 것 같다.

秘話(비화) 金日成(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정치위원呂政(여정) 手記(수기) <15> 1990.07.15 동아일보

... 우리 방에는 총참모부 무기기재 공급국 부국장 박병수, 총참모부 군사과학국장 최원, 6사단장 고기환, 3군단 통신부장 최명철, 직업총동맹 경공업위원장 이선희등 5명이 있었는데 내가 방장이 되었다. 강계 감옥에는 모두 2백43명의 반당종파가 모이게 됐다. 교화소 당국에서는 이들의 지휘, 일광욕 시의 질서유지, 당국의 지시 전달을 담당할 죄수 지휘자로 강원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서달균을 임명했다. 나는 이 2백43명의 내력을 알아보리라 마음먹었다. 진짜 반당종파분자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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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 전쟁사 제1집 - 제3집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6.25 전쟁사 제1집 - 전쟁의 배경과 원인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2004

제3장 북한군의 창설 / 제3절 군 창설 준비 / 1. 보안간부훈련대대부 설치 (pp. 245~246)

.. 해방 1주년이 되는 1946년 8월 15일 평양 서기산(瑞氣山) 무덕전(武德殿) 자리에 보안간부 훈련대대부를 창설하였다. 이는 명칭상 보안간부 훈련소의 지휘부인 것처럼 비추어졌지만, 실제로는 정규군대의 위장명칭이자 북한군의 최고 참모부였다. 이때 훈련대대부(사령부)의 주요 간부진은 다음과 같다.

훈련대대부 사령관 : 최용건
부사령관 겸 문화 부사령관 : 김일
포병부사령관 : 무정
총참모장 : 안철 (안길 ?)
작전 부장 : 유신
간부 부장 : 이림
통신 부장 : 박영순 (통신부 부부장 : 이청송)
공병 부장 : 황호림 (공병부 부부장 : 박길남)
정찰 부장 : 최원
사령관 총고문 : 스미르노프 소장

이들은 당시 북한내 최고 실력자이자 군사 경험자들이었다. 그런데 보안간부 훈련대대부 주요간부 가운데서도 항일유격대 집단의 최용건, 김일(金一), 안길, 박영순 등이 요직을 차지하였다.

p.255
이렇듯 병력과 무기가 증강됨에 따라 고위 간부들은 1947년 5월 17일을 기하여 보안간부훈련대대부 예하 전 장병에게 일제히 계급장을 수여하였다. 지금까지는 상하의 계급이 없이 다만 간부(장교)와 전사(병사), 그리고 직책으로만 상하 구분이 있었다. 계급장 수여식이 거행되면서 보안간부훈련대대부의 위장은 완전히 걷히게 되었고 정규군으로서의 정체가 드러났다.

제3장 북한군의 창설 / 제4절 군창설과 확장 / 3. 민족보위성 (p.297)

북한정권 수립 후 민족보위성이 조직되면서 북한군 전투서열은 민족보위상 최용건 대장, 부상 겸 문화 부사령관 김일(金一) 중장, 포병부 사령관 무정 중장, 총참모장 강건 중장, 부총참모장 최인(崔仁, 왕자인) 소장 (황호림 : 黃虎林 후임), 전투훈련국장 김웅 소장, 총후방국장 최홍극(崔弘極) 소장, 작전국장 유성철(兪成哲) 대좌, 정찰국장 최원 대좌, 통신국장 박영순 대좌, 공병국장 박길남 대좌, 간부국장 이림(李林) 대좌, 군의국장 이동화(李東華) 대좌, 문화부국장 김일(金日) 소장, 포병부국장 김봉률(金鳳律) 대좌, 전투경험연구부장 유신(柳新) 대좌, 정치보위처장 석산(石山) 대좌, 민족보위성 고문단장 스미르노프(Smirnov) 소장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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兪成哲씨, 김일성,스탈린 동의얻은뒤 한달간 전쟁계획 연합뉴스 1991-06-16
회상록 '피바다의 비화'에서

다음은 兪씨의 회상록에서 6·25전쟁에 관한 내용의 요약이다.

「6·25 전쟁 작전계획은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에 걸쳐 극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작전계획에는 총참모장 강건, 포병사령관 김봉율, 포병참모장 정학준, 공병국장 박길남, 통신국장 이용인, 공군사령관 한일무, 해군 참모장 김원무, 병기국장 서용선, 후방국장 정 목, 정찰국장 최 원, 작전국장 유성철(필자), 작전부국장 유상렬등이 참여했다.

소련 고문단에서는 바실리예프 중장, 포스트니코프 소장 및 기타 장군들과 영관급이 작전계획 작성에 주동 역할을 했다.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숙청된 고려인 가족 80인의 육필수기 : 미의회도서관
유성철(兪成哲, 1917-1995) 전 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겸 부참모장 : 미의회도서관
p.26 에 위 내용이 나옴.
p.52 의 김일성에 의해 숙청 학살 당한 사람 명단에 최원 소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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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독립운동 국가수호 사적지 국가보훈처
북한군 총참모부 정찰부 터 - 보훈처 국가수호사적지:

[기본 정보]
정의 :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였을 당시 총참모부 정찰부가 주둔했던 곳
현재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창천동 506-27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로1길 18)
현재 상태 : 멸실 / 영사관은 이전했고, 빌라가 신축되어 당시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역사적 사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총참모부 정찰부(부장 최원 총좌, 부부장 김창국 대좌)를 서대문 우체국 뒤 언덕에 있던 네덜란드 영사관 건물 2층에 설치하였다. 이들은 국군과 유엔군에 관한 첩보를 수집하여 북한군의 작전을 지원했다.
정찰부의 구체적인 운용사례는 알 수 없으나, 작전수행을 위한 관련 군사첩보를 수집하여 전선사령부와 총참모부 등에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후에는 특수공작대를 조직하여 남한의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테러활동도 수행했다. 1968년 1월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김신조 등도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준장 - 엔하위키 미러: 총좌(總佐) - 6.25 때 인민군 계급의 대좌의 위, 소장의 아래 (준장급)

[위에서 참고한 문헌 "빨치산"의 저자 이영식의 본명은 육철식(陸喆植)으로 6.25때 최원 총좌의 부하였다. 북한의 강동정치학원과 제3군관학교 출신으로 6.25당시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부 소속 통신 중위로 근무하다 빨치산이 됐다.]

「빨치산」쓴 이영식씨"運動圈(운동권)아들에 교훈주려 집필" 1988.08.23. 동아일보 14면

「그날」오면 더욱 그리운 사람들 1991.06.24. 경향신문 24면
▲26일=「빨치산」의 작가이기도 한 육철식씨는 북한의 강동정치학원과 제3군관학교 출신으로 6.25당시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부 소속 통신 중위로 근무하다 빨치산이 됐다. 그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전향, 목숨을 건졌던 그는 오늘날 자유인으로살아갈 수 있는....
[사람과풍경] “아픈 기억 유일한 처방약은 통일” : 육철식(76) 한겨레 2008.11.06.


이영식(본명 육철식) 지음, 빨치산, 행림출판 - 1988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부(제2부) = 109

p.109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부 (제2부)
서대문 우체국 뒷편 언덕에 있는 옛 화란 영사관 건물이라는 2층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에 인민군 총참모부 제2부(정찰부)가 주둔하게 되었고 나는 이곳에 근무하도록 명을 받았다. 정찰부장 최원 총좌 (중성 4)가 내어주는 군관복으로 갈아입고 그가 달아주는 소성 둘(중위)의 계급을 달게 된 셈인데 제2부 부부장 김창국 대좌(중성 3)만이 지켜본 임관이었다. 정찰부장 최원 총좌는 덩치가 크고 몸이 건장하였으나 김창국 부부장은 몸이 작고 땅땅하게 생겼다. 나는 같이 갔던 이남 출신 전사 하나만을 데리고 김창국 부부장과 함께 이층 사무실에 무전 시설을 하였다. 그리고 기요과에서 내어주는 암호문에 의해서 시간시간 김창국 대좌와 교대로 일선에 나가있는 도보 정찰대와 무전 교신을 하는 일을 맡아 했다.


육철식 : 충북 청원 출신, 1948. 10. 22 월북
강동정치학원 1048. 12~1049. 3
제3군관학교 1949. 4 ~1950. 5
평양연락소 1950.5 ~6. 10
6.25 투입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부 (제2부) 도보 정찰조 1950. 6
1952년 2월 전남 백운산 지구서 포로가 됨. 10월 석방 후 육군 근무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육철식 열람용 구술자료 : p.94에 6.25 당시 서울에 온 정찰국장 최원(채원)이 나오나 별 내용은 없음.
사료참조코드 : COH001_14_00A0003_001
사료계층명 : 사료건 하위자료수 : 총0건 사료구분 : 구술자료
사료명 : 육철식 열람용 구술자료
생산자(처) : 육철식 / 박만순; 김순애
생산기간 : 2008-07-18 ~ 2008-09-25
박스번호 : OH_08_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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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강수봉)의 수기에 최원의 직책이 군사과학국장으로 나오는데, 이는 아래 기사에서도 확인이 된다. 그의 최종 계급은 소장이다.

최창익, 최종학, 장평산 등을 숙청할 때 최원도 같이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있으나, 다른 연안파/소련파 숙청 기록에는 최원에 관한 말은 없다.

大同江(대동강)의 證言(증언) (12) 暴動(폭동)연루자 處置(처치) 1974.05.11 경향신문 4면
流血(유혈) 29년┉金日成(김일성)의 粛清劇(숙청극) 그 全貌(전모)
거의가 反金(반금)쿠데타에 관련 모두 3萬(만)8千(천)5百(백)여명이나
參加者(참가자) 처형·同調(동조)는 勞動刑(노동형)

... 폭동연루자와 그가족가운데 가장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부류가 58년 反金日成(반김일성)군사쿠데타관련자들이다. 이 군사쿠데타의 배후조종자가 崔昌益(최창익)(전부수상)이었고 그 실행주모자는 전북괴군 제4군단장 張平山(장평산)이었다. 張平山(장평산)은 中共(중공) 八路軍(팔로군)의 營長(영장)(중대장급)團長(단장)(대대장급)으로 있다가6.25남침전쟁에 참전,북괴군 제2사단장,군사정전회담 북괴측대표로 활약하다 57년 제4군단장으로승진한 인물. 그는 延安派(연안파)계열인 金雄(김웅) 崔鍾學(최종학)(전북괴군총정치국장·상장)金乙奎(김을규)(전민족보위성부상겸육대총장·중장)盧哲甲(노철갑)(전북괴군제1군단참모장·소장) 崔源(최원)(전민족보위성군사과학국장·소장) 등과 긴밀히 연락,58년5월1일을 기해 제4군단병력으로 平壤(평양)을 기습하여 쿠데타를 감행할 치밀한 계획을 짰다. 그러나 張平山(장평산)과 같이 八路軍(팔로군)에서 근무한 사단장 金昌德(김창덕)(전민족보위상 金昌鳳(김창봉)의實兄(실형)·소장)이 변절,쿠데타계획의 전모를 金日成(김일성)에게밀고했기때문에 쿠데타는 사전에 발각됐다. 金(김)의 제보를받은 金日成(김일성)은 즉각平壤市(평양시)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극비리에 민족보위성경위국장인 中將吳白龍(중장오백룡)(현국방위부위원장·대장)을급파,張平山(장평산) 盧哲甲(노철갑) 崔源(최원)등을 체포했고 金雄(김웅) 崔鍾學(최종학) 金乙奎(김을규)와 그동조자들을 가택에 연금시켰다. 또 金日成(김일성)은 당시...

북괴숙청사 - 인물중심으로- 강인덕 [중앙일보] 입력 1968년 0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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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후, 평양의 카레이스키 엘리트들, 한울 아카데미, 2013

pp.251-252 : 소련으로 못 돌아간 엘리트 간부 47명

<표 8.1> 6.25 전쟁 참전 후 북한에서 소련으로 돌아가지 못한 고려인 장령(장군)들과 군관들

최원, 인민군 소장, 사상검토후 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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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숙청된 소련파인사 45명/유엔에 「생사확인」 청원 [중앙일보] 입력 1991년 11월 16일

인권옹호韓國聯盟(한국연맹) 北(북)숙청 蘇聯派(소련파)인사 45명 유엔등에 生死(생사)확인 청원 1991.11.18 동아일보 2면 정치 기사(뉴스)
北(북)숙청 蘇聯派(소련파)인사 45명
유엔등에 生死(생사)확인 청원
인권옹호 韓國聯盟(한국연맹)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회장 金連俊(김연준))은 해방후소련 정부의 지시에 따라북한에 파견됐다가 金日成(김일성)정권에 의해 숙청당한 한인들의 생사여부와 숙청이유등을 조사해 달라는 청원서를 유엔인권위원회와 국제인권연맹뉴욕본부 국제적십자사총재 유엔주재남북한대사 국제사면위원회등에 16일 보냈다. 이번 청원은 소련에 있는「조선에서 활동한 고려인 유가족후원회」(회장鄭尙進(정상진))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것으로 이단체는 해방후 파견된 2백여명중 북한 당정고위직을 지낸 45명이 숙청된뒤 생사여부가미확인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행방불명자명단(괄호안은 행방불명 전후의 직책).

△박창식(慈江道(자강도)인민위원장)△김열(공업성부상·咸北(함북)도당위원장)△김동철(최고재판소부소장)△이용석((농업성부상)△김춘삼(내무성")△엄일(내무성과장)△전일(38선여단군사정치부장)△김만석(金日成(김일성)근위부대장)△최철환(내각사무국장)△방춘걸(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 경리부장)△박의완(내각부수상)△박창옥("")△고히만(임업상)△김철우(군단정치위원)△장익환(교통성 부상)△김동학(최고검찰소 부소장)△장주익(과학원 서기장)△김혜경(여·인민군후방국장)△김칠성(해군참모장·해군소장)△김용수(출판지도국장)△박태준(로동성 부상)△허익(로동당 중앙위원회직속 고급당학교장)△김택영(사법성부상)△박일영(체코주재대사)△김광(무역성 부상)△최종학(인민군 총정치국장·상장)△최원(인민군 소장)△정학준("포병중장)△이종인("통신소장)△김원길(항공부참모장·소장)△최홍국(인민군후방국장·소장)△김원무("대좌)△김태건("항공소장)△김철용("대좌)△안 철("")△박창원("소장)△서춘식(平北(평북)도당위원장)△허 빈(黃海北道(황해북도)당위원장) △박알렉세이(농민은행장)△안일(인민군기관잡지주필)△김창수(네덜란드대사관참사)△김철훈(문화기관간부)△김두환(무역성부장)△고봉철(화가)△김뾰뜨르(신문사부주필)


北韓서 숙청 '소련파'인사 生死확인 추진 연합뉴스 1992.03.03
인권옹호 한국연맹,숙청 `소련파'자료 수집 연합뉴스 199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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