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지령문과 (45.09.20) 쉬킨 중장 비밀 보고서(45.12.25) 소련 자료 및 관계자 증언

동아일보 모스크바 삼상회의 보도의 진실 / 박헌영의 뉴욕타임스 발언 논란 동네 : 동아미디어그룹 6월 - 3 - 2013

존스턴의 박헌영 인터뷰 관련 NYT 기사 - 194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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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쉬킨 보고서



First Session of the Council of Foreign Ministers, London, September 11–October 2, 1945
Moscow Conference of Foreign Ministers, December 16–26, 1945

Council of Foreign Ministers. Meeting (1945 : London). 9/11/1945-10/2/1945
11 September – 2 October 1945 : London Foreign Ministers Conference


FIRST MEETING OF COUNCIL OF FOREIGN MINISTERS, LONDON, SEPTEMBER 11 TO OCTOBER 2, 1945 : Report by Secretary Byrnes, October 5, 1946
FIRST MEETING OF COUNCIL OF FOREIGN MINISTERS, LONDON, SEPTEMBER 11 TO OCTOBER 2, 1945 : Report by Secretary Byrnes, October 5, 1946

Council of Foreign Ministers
The Council of Foreign Ministers’ meetings, 1945-1947






“한국엔 잘못된 신앙 있다 스탈린의 북 단독정권 지령 자료 있는데도 인정 안 해” [중앙일보] 2011.11.09 종합 1면
‘현대사 50년 연구’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인터뷰
또 스탈린이 북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린 사실은 냉전이 끝나고 소련의 기밀문서가 발굴되며 공개되었는데 그런 자료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도 있다며 “한국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신앙’이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북한 지역이 스탈린의 지령에 의해 45년 10월 이후 중국 공산화의 후방기지로 편입됐다는 분석은 이 교수가 이번에 처음 제시하는 것으로, 우리 현대사에 대한 기존 통념을 뒤집는 해석이다.

1946년 스탈린 “북한, 중공군 후방기지로” 지령 … 분단,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중앙일보 2011.11.09 종합 4면
이정식 교수가 밝혀낸 해방정국 한반도
한반도 비극의 시작점 : 이미지의 텍스트


이정식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인생 유전 중앙일보 2011.11.09 종합 4면


"北韓(북한)에 부르주아 民主政權(민주정권) 수립"스탈린,占領(점령) 蘇聯軍(소련군)에 비밀지령 문서 50년만에 공개 1993.02.26. 동아일보 6면
"北韓(북한)에 부르주아 民主政權(민주정권) 수립" 스탈린,占領(점령) 蘇聯軍(소련군)에 비밀지령 문서 50년만에 공개
【東京聯合(동경연합)】스탈린이 제2차대전직후 蘇聯軍(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던 北韓(북한)에「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할 것」을 명령한 최초의기밀문서가 50년만에 완전공개됐다고 日本(일본)의 마이니치(每日(매일))신문이 26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번에 밝혀진 기밀문서로 북한의 단독정권 구상을 소련이 북한 점령직후부터 갖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령문서는 스탈린(소련군 최고사령관)과 안토노프 軍(군)참모총장이 바실레프스키극동전선 총사령관과 연해주 군관구 군사평의회,제25군사평의회에 보냈던 45년9월20일자 암호 전보로소련군의 북한점령에 따른소련군최고사령부의「7개항지시」가모두기록돼있다. 기밀문서는 제1항목에서 소련은 북한내에 소련형 정치기관을 수립하지못하도록 하고 제2항목에서는 反日的(반일적)인 민주주의정당과 조직을 결집한「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확립할 것을 명기함으로써북한에 東歐型(동구형) 민주연합정권을 수립하려했음을 알수있게 해주고 있다. 특히 제7항목에서는 연해주 군관구 군사평의회가북한행정의 지휘권을 갖도록 지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스탈린이북한점령직후북한에단독정권수립을 노리고 있었는지,아니면 북한단독의공산당창설을 시도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부분이 논의의 표적이 돼왔었으며이때문에 스탈린의 미공개지령문서부분은 최대의 관심사항이 돼왔었다.

"부르좌 민주정권 북한에 수립하라" 1993.02.27. 한겨레 6면

분단·스탈린지령문 놓고 ‘불꽃토론’ 조선일보 2006.04.21 / 종합 A4 면
정치학회·조선일보 연중기획어제 첫 학술회의

[1948-2008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대한민국 탄생의 국제적 배경 조선일보 2008.07.24 / 종합 A8 면
"북한에 '親소련 정권' 먼저 들어서 美·蘇 모두 영구분단 의도는 없어"
"소련은 겉으로는 한반도에서 자주 독립 정부의 수립을 지지했다. 그러나 내부 비공개 문서에서는 소련의 국가 이익을 지켜줄 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학술대회의 23일 세션 '대한민국 탄생의 국제적 배경'에서 이지수 명지대 교수는 새로 발굴된 소련측 자료를 바탕으로 한 〈2차대전과 소련의 한반도 정책〉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1945년 12월 25일자의 비밀문서 〈슈킨 보고서〉가 '한반도 이북 지역에서 소련의 정치·경제·군사적 이익을 영구히 지킬 인물들로 구성된 정권을 구축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의 지시와 협조로 독자적인 질서가 구축되고 있었던 반면, 남한에서는 단일 정부 수립과 남북대화 지속을 둘러싸고 남·남(南·南) 갈등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


[제40회 이승만 포럼] 원문으로 본 그 비밀의 정체
스탈린 지령문 "북한에 소련체제 이식은 이렇게 하라"

스탈린 지령문 "북한에 소련체제 이식은 이렇게 하라" : 스탈린 지령문 이미지
북한의 소련 체제이식은 동유럽의 경우와 어떻게 달랐는가?

소련이 만든 북한, 아직도 붕괴 안 된 이유는…"돌연변이 공산주의 북한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제40회 이승만포럼
2014. 6. 19(목) 오후2:30~4:30 정동제일교회 아펜셀러홀
북한의 소련 체제이식은 동유럽의 경우와 어떻게 달랐는가?
이지수(명지대학교, 정치학)

구소 북 장악음모 “결정적 자료”/쉬킨중장 비밀보고서 내용·의미 한국일보 1995.08.14


이지수(李志樹), 북한의 단독정권 수립과정과 정치적 함의 韓國政治外交史論叢 제34집 제2호, 2013.2, 101-132 (32 pages)
이지수(李志樹), 북한의 단독정권 수립과정과 정치적 함의 KCI download

이지수(李志樹), 북한 정치체제에 드리워진 스탈린의 그림자, 중蘇연구 제39권 제3호, 2015 가을. pp. 351~377


이정식Ii대한민국의 기원』을 읽으면서 - S-Space - 서울대학교

이 장은 졸고, “북한의 단독정권 수립과정과 정치적 함의,” 한국정치외교사논총 34집, 2호
(2013), pp.104-108.와 역시 졸고,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의 한반도 정책”, 대한민국 건국
의 재인식, 기파랑(2009)의 내용을 수정 인용함.
16) 여기서 두 번째의 쉬킨 보고서의 일부를 직접 인용하겠다. 이 내용 역시, 졸고, “북한의
단독정권 수립과정과 정치적 함의,”에 상세하다.

두 문서에 대해서는, 졸고, “제2차 세계대전과 소련의 한반도 정책”,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 기파랑(2009)에 더욱 상세하다.


구소 북 장악음모 “결정적 자료”/쉬킨중장 비밀보고서 내용·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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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이승만포럼] 김국후 전 중앙일보 부국장
북한 탄생 3요소, 스탈린, 카레이스키, 김일성 2014.07.18



[제9회 이승만 포럼] 평양의 소련 군정: 스탈린의 '민주기지' 지령과 공산화
스탈린 X파일: 김일성 낙점, 북한정권 탄생의 비화
최종편집 2011.11.04 15:44:46

<9회 이승만 포럼/ 발표 요지>
평양의 소련 군정: 북한 김일성 정권은 어떻게 탄생했나
김국후 (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비록] 평양의 소련군정 /도서출판 한울, 2008>저자



스탈린이 만든 구 소련의 ‘식민지’ 북한 RFA 201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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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read_body.jsp?ID=2006042200412

[사설] 한국정치학회의 解放前後史 새로 쓰기
발행일 발행일 : 2006.04.22 / 여론/독자 A31 면  

한국 政治學會정치학회가 우리 사회 이념대립의 출발인 解放前後史해방전후사 연구의 偏向편향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정치학회는 20일 학술회의 발표를 시작으로 ‘해방전후사 제대로 쓰기’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학회는 특히 1990년대 이후 공개된 舊구 蘇聯소련의 비밀문서를 통해 소련 軍政군정의 실상을 집중적으로 살펴 남북한 군정과 정부 수립과정을 사실 그대로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현 정권 출범과 함께 官관주도의 각종 국가위원회를 위원장부터 위원까지 독점한 ‘新官邊신관변 역사학자’들은 해방 이후 親美친미 右派우파가 득세하면서 민족자주세력이 좌절했고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권 수립이 분단의 영구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리고 현정권은 이렇게 左좌편향된 역사관을 그들이 주도하고 있는 각종 과거사 청산작업의 교과서로 삼아왔고 이것이 대한민국이 오늘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의 主因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규정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이 그 표본이다. 지난 2월 나온 脫左派的탈좌파적 ‘해방전후사의 再재인식’이 출간 하루 만에 2000질이 동날 만큼 인기를 얻은 것은 80년대 출간돼 우리 사회에 해방전후사에 대한 左좌편향의 시각을 도입한 시발점이 됐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담긴 역사관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우선 新官邊신관변 학자들은 줄곧 1946년 6월 3일 “가능한 지역 내에서 총선을 실시하여 정권을 수립하자”는 이승만의 ‘井邑정읍 발언’이 남북 永久영구 분단의 시발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제 회의에서 ‘남북한 정부 수립과정 비교’를 발표한 이정식 교수는 “ ‘소련 점령지역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라’는 1945년 9월 20일자 스탈린 비밀지령이 남북 분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소련의 사주를 받은 金日成김일성 집단이 이승만 정읍 연설보다 9개월 앞서 남북 분단을 계획적으로 밀고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新신관변 역사학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은 토지개혁과 친일파 청산같은 ‘민주개혁’에 성공했다면서 은연중 북한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소련 기밀문서를 연구해온 학자들은 ‘소련의 이익을 영구히 지켜낼 만한 인물들로 구성된 정권을 수립하기까지 몇 가지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서 ‘북한의 反動반동 지주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토지개혁과 북조선 내 정권을 중앙집권화할 것을 스탈린에게 건의한다’는 내용의 1945년 12월25일자의 소련군 총정치사령관 쉬킨 보고서를 인용, 신관변 역사학자들의 북한의 민주개혁 주장이 날조된 신화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地主지주를 숙청해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수단이었다는 얘기다.

해방전후사 인식의 좌편향과 그런 역사관에 感染감염된 정치세력에 의한 지금의 대한민국 정체성 혼란은 주류 학계가 할 일을 하지 않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정치학회의 해방전후사 연구가 舊구시대 反共반공 일변도의 右우편향을 벗어남과 아울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북한의 정통성을 치켜세우면서 젊은 세대들을 오도하는 시대착오적 左좌편향의 역사관을 바로잡아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正史정사를 남기길 바란다. 
 
본문자수 본문자수 : 1659
기사유형 기사유형 : 고정물;사설 
표사진유무 표/그림/사진 유무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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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read_body.jsp?ID=2006121102000

[사설] 한국정치학회의 ‘해방전후사 제대로 쓰기’
발행일 발행일 : 2006.12.11 / 여론/독자 A39 면  

한국정치학회가 지난 4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개최한 解放前後史해방전후사 학술회의가 8일 모두 끝났다. 이번 年中연중 학술회의는 ‘남북한 정부 수립과정 비교 1945~1948’이라는 주제처럼 그간 남한 쪽 문제점을 파헤치는 데만 치우쳐 있던 左偏向좌편향 해방전후사 연구를 남·북한을 통합하는 시야로 넓히고 끌어올렸다. 학회는 舊구소련에서 비밀해제된 자료들을 이용해 해방 직후 북한에서 일어났던 일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을 비교했다. 당시의 한반도 전체 상황을 보는 巨視的거시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세운 것이다.

정치학회는 좌파 학자들의 주장과 다른 史實사실을 여럿 공개했다. 좌파 학자들은 6·25전쟁에 대해 ‘北侵북침’ ‘南侵남침 유도’ ‘무력 충돌’을 차례차례 들고 나왔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련이 처음부터 한반도 무력통일을 목표로 북한의 正規軍정규군 창설을 지원하고 공격적 군사력을 계속 늘린 반면, 미국은 남한에 치안 유지 수준의 警備隊경비대를 설치하고 방어용 무기를 제공했을 뿐이었다는 것이 史料사료를 통해 확인됐다.

좌파 학자들은 美미군정이 한국인의 의지를 억압했고, 蘇소군정은 자율성을 보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한에선 100개 넘는 정당이 경쟁하며 민주주의의 길을 닦았지만 북한은 3개 정당만 허가 받아 결국 全體主義전체주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한국의 좌파들이 그간 남·북한과 소련·미국의 사료에 입각해 해방전후사를 復元복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좌편향 이념과 고정관념에 따라 그 시대를 創作창작한 것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대한민국의 지난날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규정했다. 학생들은 1980년대 군사독재의 私生兒사생아 格격인 民衆史觀민중사관과 國粹主義국수주의로 쓰인 교과서를 통해 대한민국 역사를 배우고 있다. 공영방송은 다큐멘터리부터 드라마까지 동원해 대한민국이 지난 60년 동안 성취한 국가 현대화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치학회가 “역사를 제대로 쓰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한 것은 큰 박수를 받았다. 대한민국 건국사와 대한민국을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바로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각 분야의 권위 있는 학회들이 세계사 흐름에 符合부합하는 한국現代史현대사를 쓰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 
 
 
본문자수 본문자수 : 1231
기사유형 기사유형 : 고정물;사설 
표사진유무 표/그림/사진 유무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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