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이 1931년 살해한 정모(鄭某)는 정신(鄭信)이 아니다. 한국 및 미국 자료

세기와 더불어 2권 제4장 9.《리상촌》을 혁명촌으로 1930년 10월 오가지 시절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변달환, 변대우, 최형우
《세기와 더불어》제2권 제4장 10. 잊을수 없는 사람들
《세기와 더불어》제6권 제16장 6. 스쳐버릴수 없었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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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김일성 최초의 무장 투쟁 : 조선혁명군 고동뢰(高東雷) 소대장 일행 10명 살해
변달환(邊達煥), 천학진(千學振), 한용서(韓用瑞)의 체포 및 재판 관련 신문 기사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40 : 間島 및 接壤地方 不逞鮮人團의 行動에 關한 件 : 鈴木要太郞(間島總領事) 1924년 08월 29일
鄭信(大韓軍政署 人事部 部長) 金佐鎭(大韓軍政署 司令部 司令官)


김관성(金觀聲) 일명 김관성(金觀星). 평양 출신.
회덕현(懷德縣)오가자(五家子)에서 요하농장(遼河農場)을 경영하여, 300여 가구의 우리 동포를 입주시켜 교민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였다.
아울러 그 곳 일대의 교민자제의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기관과 청년회를 조직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 노선상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공산당원에게 암살당하였다.

김관성(金觀聲) 두산백과
건국훈장 애국장(1995)
지린성[吉林省] 회덕현(懷德縣) 오가자(五家子)에서 요하농장(遼河農場)을 경영하면서 변대우(邊大愚)·문상목(文尙穆)·곽상하(郭尙夏)와 함께 동포 농민 300여 호를 이주시키고, 교육기관과 청년회를 설립하였다.

농우회(農友會)를 조직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에 독립운동노선상의 갈등으로 인하여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하였다.

김관성(金觀聲) : (1890) ~ (1923) 독립유공자공훈록
김관성(金觀聲) : (1890) ~ (1923) 독립유공자공적조서

광한단 [光韓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光韓團員 檢擧의 건 : 1921-02-23
http://e-gonghun.mpva.go.kr/portal/url.jsp?ID=PV_JS_0003_00000067

http://db.history.go.kr/id/haf_041_0550

統義府의 變報와 그 後經過를 聞하고 1922-12-13
지난 十月十四日(陰八月二十四日)暗夜에 寬甸縣 ○○에셔 前統軍府時 吳錫泳의 司令下에 잇던 第一中第一少隊軍人二十餘名이 金昌義氏의 銃殺를 爲始하야 梁起鐸 玄正卿 高豁信 黃東浩 金觀聲等 十數人을 亂打致傷케 하엿다 함을 드를 때에 나는 그렬理가 잇나, 西間島에서는 八大團體의 聯合이 成立되야 諸般의 事情이 圓滿히 進行되며 可히써 外地社會에 模範이 될만 하다는대 하고 그 通信이 虛報이 갓지 하고 자못 安心하고 잇섯소이다



武裝自衛團引率(무장자위단인율) 人民會長大活動(인민회장대활동)

  • 1930.12.24
  • 동아일보
  • 2면
  • 사회
  • 기사(뉴스)
武裝自衛團引率(무장자위단인율) 人民會長大活動(인민회장대활동) ◇國民府等思想團體襲擊次(국민부등사상단체습격차)로 討伐隊(토벌대)의前哨隊(전초대)로 【장춘지국전보】븍만에근거를둔 조선○○단인 ...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B04013183700、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I-4-5-2-3_10_009)(外務省外交史料館)」
標題 : 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 分割4
p.5 不逞鮮人李鐘洛一派ノ動静ニ関スル件本文内容第六行目既報 - 소화 5년 12월 22일 하얼빈 총영사
p.18 : 한족총연합회 회원 체포 (정일우[정신], 유창덕 등)



『○○聯合會(연합회)』鄭一隅氏被殺(정일우씨피살)

  • 1931.01.14
  • 동아일보
  • 7면
  • 사회
  • 기사(뉴스)
"○○聯合會(연합회)" 鄭一隅氏被殺(정일우씨피살) 민족주의자로 만흔 활동 共產黨(공산당)의狙擊(저격)으로 【장춘】북만(北滿(북만))에잇는 ○○련합회(○○聯合會(연합회))주석(主席(주석))이든 고김좌...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9권 > 1930년 11월중·11월말 > 이달에 北滿洲韓族聯合會의 幹部
이달에 北滿洲韓族聯合會의 幹部 鄭一隅(一名 鄭信鄭潤三)가 吉長線부근에서 共産主義者에게 被殺되다.
東亞日報 1931.1.14

근대사연표 1930년 12월 16일 국민부 兪昌德·鄭一隅 등 4명, 石頭...
국민부 兪昌德·鄭一隅 등 4명, 石頭河子에서 친일파 金汝伯의 무장자위 단에게 피체.
[출전] 동아일보 1930. 12. 24. 일제침략하36년사 9 p. 620.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9권 > 1930년 12월 16일 > 國民府 兪昌德 鄭一隅 등 4名이
http://db.history.go.kr/id/su_009_1930_12_16_1380
國民府兪昌德鄭一隅 등 4名이 石頭河子에서 活動中 朝鮮人民會長인 親日派 金汝伯이 인솔하는 武裝自衛團의 습격을 받아 체포되다.
東亞日報 193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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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 列傳 발췌

이명영(李命英)교수의 저서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 (신문화사, 1974)" p.135와 "권력(權力)의 역사(歷史) 제2판, (종로서적 1989)" pp.303~305에 김일성이 1930년 11월께 만주 회덕현 오가자(懷德縣 五家子)에 있을 때 몇몇 사람들과 함께 50리 가량 떨어진 회덕현 대유수(大楡樹)에 사는 정모(鄭某)와, 오가자에 사는 중국인 2명을 살해했다는 길흑농민동맹사건(吉黑農民同盟事件)에 대한 증언이 나온다. 당시 김일성은 이만진(李萬鎭)씨 집에서 동갑내기인 아들 이선일(李善一)씨의 방에 두어달 동안 함께 기거했으며, 김일성(金一星)이란 별호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 열전, p.122] 오가자(五家子)에는 길흑(吉黑)농민동맹조직이 들어오기 전에 요하농촌공소(遼河農村公所)란 한인자치단체본부가 있었으며 그 책임자는 제3절(第三節)에서 설명(說明)했듯이 이만진(李萬鎭씨)였는데 이(李)씨는 이세(二世) 교육 때문에 삼성(三成)학교를 세워놓고 있었다. 교장은 아동문학가 이몽린(李夢麟)이었고 고이허(高而虛), 최형우(崔衡宇, 一名 崔一泉), 안육주(安六洲) 등이 선생으로 있었다. 1930년 11월께 김성주(金聖柱)는 오가자(五家子)에서 두달쯤 묵은 일이 있다. 이만진(李萬鎭)의 집에서 그의 아들 이선일(李善一)씨 (62세, 서울 영등포 거주)와 함께 한방에서 살았다. [최형우가 김일성에게 일성(一星)이란 별호를 지어준 것도 이때이다.]


滿蒙 各地에서의 鮮人의 農業關係 雜件 6 > 懷德縣 兩家子地方의 水田計劃과 下流鮮農의 影響에 관한 件 : 1935년 11월 04일
趙元植, 兪漢春, 吳啓榮, 金仁奎, p.3 李萬鎭(小五家子農務稧長), 裴陳榮(滿人地主代表), 李應辰(公主嶺高麗農場), 李淵, 洪承均(全羅北道知事), 宋元一(公主嶺朝鮮人民會副會長), 嚴得龍(朝鮮人民會長), 李宜豊(朝鮮人民會書記)

關機高鮮 제5481호 在滿鮮農 紛爭調 送付의 件 : 滿蒙 各地에서의 鮮人의 農業關係 雜件 7 : 1935년 11월 11일
p.15 李鐘洛 吉林省 永吉縣,/
p.27 회덕현 오가자(懷德縣 五家子)의 농업분쟁 : 趙元植, 宋元一, 李万鎭, 李宜豊(朝鮮人民會書記) , 五家子에서 상류에 新規水田을 계획하는 鮮農과 그에 반대하는 鮮農간의 水利紛爭,
懷德縣 兩家子


김일성 열전은 출간전 1974년 중앙일보에도 연재되었는데, 해당 사건 관련 부분은 아래와 같다.

    김일성 열전 :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 (10) | 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 김성주의 살인벽 | 총을 쓰지 않고 타살·교살을 밥먹듯 중앙일보 1974.04.17

    이때 김성주(金聖柱)는 이종락의 지시로 같은 무장대원인 장소봉(張素峯)·김강(金剛, 본명 김제민金濟民)·장아청(張亞靑 중국인·김성주의 평단 중학 때의 친구이며 김의 만주에 있어서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무송 출신) 등과 함께 그 지방 일대를 내왕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가자(五家子))에 두어 달 묵은 것이다.
    이종락의 길흑농민동맹(吉黑農民同盟)은 오가자에도 지부를 설치했는데 변달환(邊達煥, 당시25∼26세)이 그 책임자였다. 변은 동시에 오가자 지부의 군사세포의 대장이었으며 이선일(李善一)씨도 잠시 그 부대장(副隊長)으로 있은 일이 있다. 대원엔 이선일씨의 사촌 처남 한영서(韓永瑞)와 문시선(文時宣) 등이 있었다. 오가자 에 있어서 김성주는 농사일 같은 것을 자진해서 돕기도 했으나 그 성격은 사나운 정도를 넘어서 점점 잔인한 면이 나타났다. 그 잔인성 때문에 드디어 큰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일 저지르고 재빨리 도주>
    오가자에 50리쯤 떨어진 대유수(大楡樹)란 곳에 정모(鄭某)라는 동포가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을 반동으로 몰아 교살한 것이 바로 김성주 였다. 김성주는 변달환(邊達煥)·한영서(韓永瑞) 등과 같이 정모를 붙잡아 오가자로 데려오다가 도중에서 김성주가 정(鄭)을 교살해 버린 것이다.
    또 이선일씨는 김성주가 중국인 두 사람을 반동으로 몰아 때려죽이는 것을 오가자에서 목격했었다. 갖고 있던 총도 쓰지 않고 일부러 교살·타살하는 것이 김성주의 본성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살인 사건을 길흑농민동맹사건(吉黑農民同盟事件)이라 했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었다.
    이 농민동맹사건 때문에 변달환(邊達煥)·한영서(韓永瑞)·천학진(千學振) 등이 붙잡혀 신의주 감옥에서 복역했다. 천학진은 해방되어 출옥했다. 그러나 김성주는 이 사건 때도 재빨리 도망을 쳐서 붙잡히지 않았다. 길림에서도 그랬고 남만 학원 때도 그랬고 또 이 사건에서도 그는 도망을 치는데는 아주 머리가 빨랐다. 해방 후 김성주가 평양에 나타나 권력을 잡자 이들은 모두 한 자리씩 했다. 한영서는 대동군 농민위원장, 문시선은 문화성, 변달환·천학진도 정권기관에서 일했다. 이선일씨는 같이 일 하자는 걸 뿌리치고 월남했다.
그런데 허동찬(許東粲)씨는 저서 "김일성 평전(金日成 評傳, 북한연구소, 1987.06)" p.368 에서 위에 나온 김일성(김성주)이 살해한 정모(鄭某)가 바로 비슷한 시기에 암살된 독립운동가 정신(鄭信, 1898~1930)이라고 단언한다. 허씨는 이명영 교수의 저서들에 나오는 김성주가 정모(鄭某)를 살해했다는 증언 외에, 정신(鄭信)을 암살한 범인이 이종락의 부하라는 기록과, 정신이 당시 이종락 일파와 대립 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북한 김일성(김성주)이 당시 이종락의 부하였으므로 증언과 기록을 종합하면 김일성이 살해한 정모(鄭某)가 바로 정신(鄭信) 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명확히 밝혀진다. 정모(鄭某)를 살해한 범인들 중 변달환(邊達煥)·한영서(韓永瑞)·천학진(千學振) 등이 붙잡혀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당시 신문들에 보도되어 확인이 된다.
변달환(邊達煥), 천학진(千學振), 한용서(韓用瑞)의 체포 및 재판 관련 신문 기사
피살자 정모(鄭某)씨의 이름은 정원일(鄭元一)로 정신(鄭信)이 아니며, 일본 밀정으로 몰려 살해 당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자는 1930년 (昭和 5년) 음 12월 25일 밤으로, 양력으로는 1931년 2월 12일이므로, 정신(鄭信)이 암살된 이후에 일어난 다른 사건이다. 또 이선일씨가 김일성이 오가자에 와서 두 달가량 머물렀다고 한 1930년 11월도 양력 아닌 음력으로 보아야 시기적으로 맞는다. 당시 국내는 대부분 음력으로 날짜를 세던 시절인데 만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영서(韓永瑞)는 언론에는 한용서(韓用瑞)로 나오는데, 김일성 열전에는 증언자 이선일(李善一)씨의 4촌 처남이라 하므로, 잘 아는 사이라 한영서(韓永瑞)가 맞을 듯하다.  이선일(李善一)씨는 당시 사건의 범인들 김성주(金聖柱)와는 같은 방에 기거했고, 한영서(韓永瑞)와는 인척관계이니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있었을 것이므로, 증언도 믿을만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언론 보도에 체포되지 않고 달아난 공범으로 홍종환(洪鍾煥)이 있다고 했는데, 김성주의 가명이거나, 잡힌 사람들이 엉뚱한 이름을 댔을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도 회덕현 대유수(懷德縣 大楡樹) 또는 신문 보도된 회덕현 마선(懷德縣 馬船)으로 정신이 암살된 장소와 다르다. 국내 독립운동사 문헌에는 정신이 길장현(吉長縣) 화피역(樺皮驛) 부근에서 암살되었다고 했으나, 길장현(吉長縣)은 없는 지명이고, 길림(吉林)과 장춘(長春)을 연결하는 철도 길장선(吉長線)의 화피역(樺皮驛, 樺皮廠站, 桦皮厂站)이 맞을 것이다.

허동찬(許東粲)씨 저서 "김일성 평전(金日成 評傳, 북한연구소, 1987.06)" p.368에 나오는 정신(鄭信) 암살과 관련된 기록에는 암살 장소가 중동선(中東線) 카륜(卞倫)역 부근이라 하였다. 같은 길장선(吉長線)에서 카륜(卞倫)역은 장춘 인근이고, 화피창(樺皮廠)역은 길림 인근으로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다. 정신(鄭信)은 중동선(中東線)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하므로 대유수에서 암살 당했다고 볼 근거도 없다.

정신(鄭信, 1898년 ~ 1931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31년 1월 길장현 화피역(吉長縣樺皮驛)에서 공산당원에게 피살되었다.

정신(鄭信, 1898년 ~ 1931년 1월) 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위에 나오는 정신의 암살 시기 1931년 1월은 부정확하며, 허동찬씨가 인용한 이종락 부하가 정신을 암살했다는 아래 길림 총영사 보고서 일자가 1930년 12월 27일인 것을 볼 때 암살 시기는 그 이전이다.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B04013183700、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I-4-5-2-3_10_009)(外務省外交史料館)」
件名標題 : 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 分割4
昭和五年十二月二十七日在吉林総領事石射猪太郎 外務大臣男爵幣原喜重郎殿
p.38에 이종락 부하가 中東線 카륜(卞倫)역 부근에서 정신을 암살했다는 1930년 12월 27일자 길림총영사 보고문이 나옴.
카륜역은 길장선에 있으며, 중동선은 다른 노선으로 잘못인 것 같다.

中東鉄道
동청철도(중동선) 하얼빈에서 만주리에 이르는 중동선 철도
하얼빈 → 치치하얼(齐齐哈爾) → 하이라얼(海拉爾) → 만주리(滿洲里) (거리12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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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2-27.pdf : pdf 파일 이미지


본문중 동아일보 다음에 부기된 글자는 支局이다.


이종락은 1931년 1월에 구속되었다. 동아일보에 이종락(李鍾洛) 부하(部下) 김일성(金一成)이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1931년 3월과 5월 두 차례 보도되었다. 이 김일성(金一成)과 김성주(金聖柱)는 동일인일까? 둘 다 이종락의 측근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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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zh-yue.wikipedia.org/wiki/%E6%A8%BA%E7%9A%AE%E5%BB%A0%E7%AB%99
樺皮廠站
樺皮廠站(樺讀話或者華,粵拼:waa6*4 pei4 cong2 zaam6)係鐵路車站,喺中國吉林省吉林市船營區樺皮廠鎮。站1912年起,郵政編碼132205。長圖鐵路經過呢站,而家有貨運,無客運,而站同上下行都未電氣化。車站距離長春站有九十三公里,屬於瀋陽鐵路局,歸四等站。


http://www.lib.kobe-u.ac.jp/das/ContentViewServlet?METAID=00098590&TYPE=HTML_FILE&POS=1&LANG=JA
吉長鉄道開通 : 大阪朝日新聞 1912.10.23(大正1)
全線七十九哩
南満鉄道の最北端なる長春より吉林省域に達する所謂吉長鉄道は、今十六日を以て全線七十九哩の敷設を終り二十日より開通の予定である、従来は三四日も費して不便利極まった長春、吉林間の路程も、開通後は僅僅六時間にて到着し得ることとなった、支那人が湖南の長沙に似たりと誇り、日本の遊歴者も恰も京都に遊ぶの感ありと云う、松花江畔の山紫水明、満洲に於て別天地を為せる吉林省域の遊覧にも至極便利となるであろう、其の駅名を示せば頭道溝、長春、安竜泉、卞倫、飲馬河、下九台、営城子、馬鞍山、土們嶺、樺皮廠、九站、吉林の十二駅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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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덕현 오가자(懷德縣 五家子). 회덕현 대유수(大楡樹) : 오가자에서 50리 가량 떨어진 곳
장춘현 카륜(長春縣 卡倫)
길림성 이통현 고유수(吉林省 伊通縣 孤楡樹) : 장춘에서 90리쯤 떨어진 이통현 고유수

이통현의 고유수는 오늘날에는 없는 지명이며, 일제시대 지도를 볼 때 이통만족자치현(伊通滿族自治縣)의 신흥향(新興鄉)으로 보인다. 신흥향은 만주국 시절 유수촌(榆樹村)으로 불렸다고 나온다.

吉林省 >> 四平 >> 伊通 (伊通滿族自治縣)
http://www.cots.cn/City/YiTong.html
新興鄉(Xinxing Xiang) 郵編:130701 面積63平方千米。 人口144370?人。 -->鄉0駐胡家屯。轄8個村。 清雍正年間開發,民國時為樂山堡、胡家甲,偽滿時期為榆樹村、胡家甲。解放后為榆樹區,設伊通縣13區……1961年從伊丹鎮劃出設立新興鄉,意新興起的意思。

오늘날 장춘(長春) 북쪽에 유수씨(榆樹市)가 있고 고유수(孤楡樹)라 불린 적도 있으나, 만주국 시절 장춘의 약간 남쪽에 있었던 고유수(孤楡樹)와는 위치가 다르며, 별개의 지명이다.

榆樹市
清初,縣城南有株十餘人合圍的超大古榆樹,附近百公尺方圓內沒有別的樹木生長。當時有人選擇在此斬草落戶,取名孤榆樹屯,後來即以榆樹為縣名。有趣的是,由於東北各地生長著不同種類的榆樹,並且早年人們因為以榆樹地標命名,有醒目好記之優點,所以三省各地從縣到鄉鎮村屯等,經常喜歡以榆樹命名,如大榆樹、小榆樹、古榆樹、雙榆樹等。
https://kmweb.coa.gov.tw/ct.asp?xItem=6887&ctNode=919&mp=1&kpi=0&rowId=&hash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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桦皮厂镇 中华人民共和国吉林省吉林市昌邑区下辖的一个乡镇级行政单位。
Huapichangzhen(桦皮厂镇), 창이 구 지린 시 지린 성 중국


八屋鎮 中華人民共和國吉林省四平市公主嶺市下轄的一個鄉鎮級行政單位。
八屋鎮下轄以下地區: 八屋社區、久豐村、八屋村、勝利村、五家村、劉屯村、張屯村、長山村、放牛村、頭道村、三角寺村和郝家村。

怀德镇 (公主岭市) 中华人民共和国吉林省四平市公主岭市下辖的一个乡镇级行政单位。
怀德镇下辖以下地区:怀德社区、李油坊村、岭南村、岭东村、平安岭村、新建村、范家窖村、六家子村、张家店村、城东村、城乡村、西岭村、新富村、楼上村、朝阳山村、农林村、五道岗村、四道岗村、三道岗村、陈家村、黄花村、前营子村、河南村、榆树堡村、靖安村、明伦村、三里堡村、兴龙沟村、柳灌印子村、大榆树村、十里镇村、铁岭窝堡村、平房店村、三合堡村、团山子村、双榆树村、兴隆泉村、新发村、朝阳村、民立村、民兴村、民助村、青山村、和气村、民强村、同意村、同心村、民安村、勤俭村和新三道岗村。


大榆树镇 (公主岭市)
中华人民共和国吉林省四平市公主岭市下辖的一个乡镇级行政单位
大榆树镇下辖以下地区:
大榆树社区、大榆树村、孙平房村、韩家店村、太平桥村、老柜村、福胜广村、围子村、兴家村、涌泉村、两半屯村、新合村、于家窝堡村、陈家河口村和团结村。

장춘시 서쪽 공주령시의 회덕진과 팔옥진

https://www.google.co.kr/maps/place/%EC%A4%91%EA%B5%AD+%EC%A7%80%EB%A6%B0+%EC%84%B1+%EC%93%B0%ED%95%91+%EC%8B%9C+%EA%B6%81%EC%A3%BC%EB%A7%81+%EC%8B%9C/@43.504687,124.82283,8z/data=!4m2!3m1!1s0x5e39acbd0393711d:0x52f36f6991ed48db?sa=X&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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