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글루스

et cetera

검색페이지 이동

사이드 메뉴

이글루스 블로그 정보

김은열(金殷說 : ?~1028) 묘지(墓誌)

앱으로 보기

본문 폰트 사이즈 조절

이글루스 블로그 컨텐츠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board&No=4&Num=133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金殷說)은 대안군(大安君)에 봉해졌다. 김은열의 아들이 강릉군(江陵君) 태화(泰華)라고 나오니, 고려 초에 봉군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일반인에 대한 봉군이 아닌 신라 왕족에 대한 봉군으로 봐야할 듯 하다.

김은열(金殷說)의 졸년은 968년으로 많이 나오나, 묘지명의 무진년은 1갑자 뒤인 1028년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
대안군(大安君 諱 殷說) 소개 andongkim.net

김은열(金殷說 : ?~1028) 묘지(墓誌) 소개
  1. 소재 : 개성에서 북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오룡산 남쪽 기슭 임좌- 조선 정조 8년 (1784, 갑진)에 발견, 다시 묻음
  2. 연대 : 광종19년 (무진,968으로 추정) --> 한 갑자 뒤인 현종 19년 무진(1028년)일 가능성이 더 큼.
  3. <참고문헌>
    -김용선 신자료 고려묘지명 17점 (역사학보27 1988)
    -고려묘지명집성 (1993, 김용선, 한림대)
    -김연옥 고려시대 경주김씨의 가계 (숙대사론 11,12합 1982)
    -경주김씨세적보 (함흥경주김씨파보소 1925)
    -경주김씨족보(경기 고양 1985)
  4. 묘지명과 관련한 각 참고자료 기술 내용
    1)고려묘지명집성 (1993, 김용선, 한림대)
김은열(金殷說 : ?~1028) 묘지(墓誌)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네째 아들로, 시중 시랑(侍中 侍郞)이고 고려의 평장사(平章事)인 은설(殷說)이 무진년 3월 초4일 기축일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성의 북쪽 10리 되는 종암(鍾岩) 아래 오룡산(五龍山) 남쪽 기슭의 쌍룡(雙龍)이 어우러지는 북쪽[壬坐] 언덕에 장례지냈다. 형은 일(鎰)이고, 다음은 굉(鍠)이며, 그 다음은 명종(鳴鍾)이다. 아우는 중석(重錫), 건(鍵), 선(鐥), 종(鍾)이고, 아들은 강릉군(江陵君) 태화(泰華)이다.

〔출전:『역주 고려묘지명집성(상)』(2001)〕

新羅敬順王金傅第四子 侍中侍郞 有高麗平章事 殷說 卒于戊辰三月初四日 己丑葬于城北十里 鍾岩下 五龍山南麓 雙龍合金 壬坐之原 兄則鎰 次鍠次鳴鍾 弟曰重錫 曰鍵 曰鐥 曰鍾 子江陵君泰華

〔출전:『慶州金氏族譜』(1985)〕
---------------------------------------------------
박철상, 「조선 金石學史에서 柳得恭의 위상」, 大東漢文學 27(2007).

유득공(柳得恭.1749-1807)의 김은열(金殷說 : ?~1028) 묘지(墓誌) 판독문

乙巳(1785)년간에 長湍府 사람이 산골짜기에서 돌 한 조각을 얻었는데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新羅 敬順王 金溥의 넷째 아들 侍中侍郞 高麗 平章事 殷說이 戊辰(968)년 3月 4일에 죽었다. 己丑(989)년에 성 북쪽10리에 있는 鍾巖 아래의 五龍山 남쪽 기슭 雙龍合金의 북쪽[壬坐] 언덕에 장사지냈다. 兄은 鎰이고 다음은湟, 다음은 鳴鍾이다. 아우는 重錫, 鍵, 錘이다. 아들은 江陵君 泰華이다. 훗날 자손 중에 昭考의 뜻이 있을까 하여 묘위로부터 정북으로 다섯 걸음 되는 곳에 지석을 둔다.’ 모두 102자인데 자체가 단정하고 돌의 빛깔은 옥과 같았으며 거의 1,000년이나 된 물건이었다. 大冢宰(이조판서)이신 金公(金思穆)이 殷說의 후손이므로 장단 사람으로부터 이를 구하여 탁본을 떠서 한 본을 수장하고 돌은 묻었다.

“乙巳年間, 長湍府人, 於山谷間得石一片, 刻云, ‘新羅敬順王金溥第四子, 侍中侍郞, 有高麗平章事, 殷說, 卒于戊辰三月初四日. 己丑, 葬于城北十里鍾巖下, 五龍山南麓, 雙龍合金壬坐之原. 兄則鎰, 次湟, 次鳴鍾, 弟曰重錫, 曰鍵, 曰鎌, 曰錘. 子江陵君泰華, 後其子孫者, 或有昭考之意, 采誌於自墓上正北五步之地.’ 凡一百二字, 字體端正, 石色如玉, 近千年物也. 大冢宰金公, 爲殷說後, 從湍民得之, 搨藏一本, 埋其石.”


이 조목은 일본 천리(天理)대학교 소장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와 수경실(修更室, 박철상) 소장 「영재서종(泠齋書種)」 중의 일부인 「고운당필기」에만 수록되어 있다.

----------------------------------------------------
이 묘지(墓誌)를 장단 사람에게서 구입한 사람은 김사목(金思穆, 1740~1829)이었다. 이후 후손 중 김정집(金鼎集, 1808~1859)이 개성유수(開城留守)로 있을 때 묘비(墓碑)를 세웠는데, 김은열의 묘지(墓誌)를 발견한 시말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김은열(金殷說 : ?~1028) 묘비(墓碑) 탁본 : 규장각 奎28013 해제

고려 초기의 인물인 金殷說의 墓碑銘을 탁본한 것. 제 1매는 “”高麗平章事輔國大安君金公殷說墓”라는 題號를 탁본한 것이고 제 2매는 본문을 탁본한 것이다.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1784년(정조 8)에 幽誌를 발견하고 改封하였으며‚ 1849년(헌종 15) 후손인 김정집(金鼎集)이 개성유수(開城留守:2품 지방관)로 부임하여 묘비(墓碑)를 세웠다고 한다. (윤경진)


 
규장각 소장 김은열 묘지명 탁본
(규장각 도서번호-奎 28013)
============================================

김은열의 졸년 무진은 광종 19년 (968년) 아닌 현종 19년 (1028년) 일 수도...

968년에 평장사 관직이 있었나?
경순왕(敬順王)이 경순(敬順)이란 시호를 받은 것은 978년.
현종은 태조의 손자, 김은열은 외손자?
경주김씨 족보에는 현종19년(1028) 졸로 한 경우도 보임.

평장사 [平章事]
요약 : 고려시대의 정2품 관직.
본문 : 982년(성종 1)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에 내사시랑(內史侍郞)평장사 ·문하시랑(門下侍郞)평장사를 둔 이래 1061년(문종 15)과 1356년(공민왕 5)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 중서시랑평장사 ·문하시랑평장사 ·중서평장사 ·문하평장사를 두었는데 모두 정2품관이었으며 정원은 각각 1명씩이었다.
[출처] 평장사 [平章事 ] | 네이버 백과사전

현종 [顯宗, 992~1031]
태조의 여덟째 아들 안종(安宗) 욱(郁)의 아들.

경순왕 [敬順王, ? ~ 978]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사절요 제2권 > 경종 헌화대왕(景宗獻和大王)
무인 3년(978), 송 태평흥국 3년ㆍ요 보녕 10년
여름 4월에 정승(政丞) 김부(金傅)가 졸하였다. 경순(敬順)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고려사 > 卷五 世家 卷第五 > 顯宗 19年 > 3월
> 죄수들에게 관용을 베풀다 | 1028년 3월 4일 음력, 현종 19년
○ 三月 己亥 放輕繫.

1028년 3월 4일의 간지는 己亥이다.
묘지의 무진년 3월 4일 기축의 기축은 일간지인가, 연간지(1049년?)인가?
卒于戊辰三月初四日 己丑葬于城北十里

968년 3월 4일의 간지는 丁亥이다.

========================================================

김용선 (金龍善), 신자료 고려 묘지명 17점 (新資料 高麗 墓誌銘 17점)



포스트 공유하기

썸네일
botw님의 글 구독하기
덧글 0 관련글(트랙백) 0
신고
맨 위로
앱으로 보기 배너 닫기

공유하기

주소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수있습니다.

http://botw.egloos.com/m/10750926
닫기

팝업

모바일기기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 ios인
모바일 기기에서 이용해주세요.

덧글 삭제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확인

게시글 신고하기

밸리 운영정책에 맞지 않는 글은 고객센터로
보내주세요.

신고사유


신고사유와 맞지 않을 경우 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위반/명예훼손 등은 고객센터를 통해 권리침해
신고해주세요.
고객센터 바로가기